재계가 "현대자동차 쇼크"에 휩싸여 있다.

올해 재계 처음으로 뚜껑을 연 현대자동차의 인사 결과는 임원 30% 감축.

인사폭이 크다해도 10%를 넘는 선에서 그치겠거니 했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그야말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놀라는 것은 어느회사건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 임원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룹 계열사의 임원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현대자동차는 현대그룹의 "수석계열사".

과거 현대자동차의 인사제도가 현대그룹의 인사제도를 주도해온 것처럼
이번 임원 대량 감원도 곧 닥칠 그룹 "임원 대학살"의 전주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이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숨겨서 조용히 해오던 임원감축 작업을
언론에 낱낱이 공개한 현대자동차의 의도다.

현대그룹의 여타계열사 임원들이 자신의 소속사도 자동차처럼 대학살에
나설 것인지 수소문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의도가
무서워서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나 인사담당자들은 현대가 "총대"를 메준 이상 더이상 망설일
것이 없다는 분위기인가하면 인사 해당자들은 이제 올 것이 왔다는 불안감에
초조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인사총무본부장 김판곤 전무는 "현대자동차의 국제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기획되어온 내부인사인데 다른 기업들이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곤혹스럽다"고 말한다.

김전무의 방에는 이미 수많은 기업 인사담당 임원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문의내용은 대체로 현대자동차가 이처럼 대규모의 임원 감량을 단행할 수
있었던 "비결".

사실 지금 시점에서 어느 기업이고 임원감축에 부심하지 않는 곳은 없다.

기업 대부분이 임원감축과 이에 따른 조직개편, 하부조직 재편 등에 대한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은 다 짜놓은 상태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인사의 규모와 시기에 고민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렴풋이 임원수를 줄여야 겠다고 느껴오던 기업들은 국내 최고 우량기업
가운데 하나인 현대자동차마저 임원의 30%를 잘라내는 구조조정에 나섰는데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중견기업 임원은 "현대자동차가 칼을 빼들었다면 국내기업 모두 현대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도 이제 본격적인 인력구조 조정기를
맞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기업에 비해 장사가 잘됐다던 A그룹 인사담당 임원은 "당초 임원
감축폭을 보수적으로 잡았으나 현대 인사 결과로 다시 조정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이 앞서가는데 한해 장사 결과에 안주할 수 없다는 얘기다.

괴로운 것은 당사자다.

자녀 교육에 월급의 대부분이 쏟아져 들어가는 나이에 남겨진 것은 "회사를
위한 용퇴"뿐이다.

"기업이 임원들의 노하우를 너무 경시하는 것 아니냐"(B그룹의 한 임원)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 임원인사의 대세는 "현대자동차 쇼크"로 이미 "대량해임"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