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과 주가가 연일 널뛰기를 계속하고 있다.

일부 외국 언론인들은 한국경제가 곧바로 무너질 듯이 보도하고 있고,
정부는 이러한 외국언론들에 반박자료를 만들어 보내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정부의 반박을
믿어야할지, 외국언론들의 보도를 믿어야 할지 여간 혼란스럽지 않다.

상황판단이 어려울수록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의 주변상황과 대응책들을 살펴보면 현시점의 한국경제에
대한 냉철한 자기분석없이 오히려 착각과 오해로부터 출발하는 논의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오해중의 하나는 외국투자가들에게 한국시장이 매우
매력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비록 대기업들의 도산과 동남아의 금융위기로 인하여 우리
금융시장에서 일시적인 외국자금 유출이 나타나고 있지만, 탄탄한
거시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한국 금융시장이 여전히 매력적일
것이다.

이는 경제성장률에 비해 주식가격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고, 금리
또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데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AMEX은행이 개발도상국 32개국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90년대이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분석대상 국가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하지만 미국달러화로
환산한 주가상승률은 체코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기업수익변화율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거시경제가 표면적으로는 건실한 성장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기업들의 수익개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주가하락은 불가피하며, 추가적인
기업도산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다 금융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시적이나마 거의 마비상태에 있다면 과연 한국은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투자대상이 될까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둘째 경기저점에 대한 논의이다.

지금은 제6순환 경기하강의 마무리단계에 있고 이에 따라 경기반등이
멀지 않았다는 논의다.

통계청이 구분한 한국의 경기순환국면을 보면 88년1월에 흔히 3저 호황기로
불리는 제4순환의 경기정점이후, 제5순환과 제6순환 두차례의 경기상승기가
있었다.

그러나 제5순환의 경기상승이 민간소비와 건설투자의 이례적인 증가에
기인한 거품상승이었고, 제6순환의 경기상승이 반도체 등의 일부 수출제품
가격의 이례적인 급등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 또한 거품상승이었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통계적으로나 기술적이 아닌 내용면에서
볼 때 한국의 경기하강은 이미 88년1월 이후에 시작되었으며 현재의
상황은 지난 10여년간 지속된 장기불황의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최근의 대기업 도산은 10여년간의 불황기에서 내실을 다지지 못하고
오히려 부채를 통해 외형확장만을 추구한 기업들이 겪을수밖에 없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유추도 가능해진다.

진정한 의미의 경기상승,즉 10여년간의 장기불황의 끝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단기적인 거품상승이나 외부적인 환경변화가 가져오는 요행의
산물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차별화되는 기술력으로 자체의 경쟁력을 회복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셋째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마치 단기간에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이다.

흔히들 한국경제가 살길은 생산의 양대 요소인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의
성공적인 개혁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경제구조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루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마치 금융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거나 노동법의 정리해고
유보조항을 앞당기면 될것 같은 착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의 자본및 노동시장이 형성되는데에 수십년이 걸렸듯이 이러한
시장구조를 바꾸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더욱이 양적 팽창주의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산재하는 상태에서
고부가가치산업을 성숙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창의적 인력의 양성이나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진취적인 모험자본의 형성에는 더욱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한국경제가 내면적으로는 이미 10년 동안의
장기불황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가속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장단기적으로 볼때 더이상 외국인에게
매력있는 투자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부터의 모든 정책은 이러한 가능성위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모든 정책은 한국경제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한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정책은 시장의 모든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되 시장붕괴를 막는
최후의 버팀목으로 언제나 그러한 자세를 천명하고 실천해야할 것이며
시장의 모든 문제에 대한 직접적 간여는 자제하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