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업체인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박무익(54) 소장은 컴퓨터를 익숙하게
다룰줄 아는 마니아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업무중에 인터넷이나 PC통신망을 뒤지며 필요한 자료를 뽑아내기
도 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컴퓨터를 쓸 일이 없다.

"컴퓨터의 모든 기능을 활용할 만한 시간이 없어요.

배울 시간도 없고요.

다만 컴퓨터는 제가 시키는 일은 아주 잘해요.

한마디로 노예라고 할수 있죠.

그것도 아주 말을 잘 듣는 똑똑한 노예요"

지난 74년 처음으로 여론조사업체인 코리아서베이사를 설립, 국내 여론조사
시장을 태동시킨 박소장은 컴퓨터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있게
잘 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10여차례 더 실시할 대선관련 여론조사 등의 업무 자체가 컴퓨터
없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소장과 컴퓨터와의 인연은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코리아서베이를 설립
하면서 처음 시작됐다.

각종 여론조사결과의 통계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IBM컴퓨터 신세를 져야 했던 것.

당시만해도 국내에서 컴퓨터 구경을 하기 힘들었던 때다.

그런 식으로 컴퓨터를 빌려쓰다 80년대 중반들어 드디어 컴퓨터를 장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스로 자료를 찾기도 하고 50개국에 퍼져 있는 타국의 갤럽소장들과
연구결과를 교환하기 위해 전자메일을 쓰기도 한다.

노트북을 끼고 다니며 필요한 자료를 그때 그때 찾아보는 열의도 보인다.

업무에도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전화통화를 통한 여론조사방식에 컴퓨터 기능을 부가, 전화
통화후 바로 조사내용을 통계화할수 있는 CATI(Computer Aided Telephone
Interview) 시스템을 구축 완료했다.

내년초에는 가구방문 여론조사자들이 노트북을 휴대, 여론조사후 자료를
곧바로 송신해 통계를 낼수 있는 CAPI(Computer Aided Personal Interview)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87년 대선때 일부에서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결과가 컴퓨터에 의해 조작
됐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컴퓨터의 부작용을 우려한거죠"

박소장은 그러나 우려만큼 컴퓨터가 이끌어갈 인류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평가한다.

컴퓨터는 진실을 왜곡하기보다는 진실을 알리는데 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것.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컴퓨터를 이용한 한국갤럽의 비전도 제시한다.

"세계 최대의 여론조사기관은 미국 테일러 넬슨리서치사입니다.

한국갤럽의 경쟁상대죠.

컴퓨터를 이용한 첨단 정보화로 이 업체를 꺾을 날이 올 것입니다"

< 글.박수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