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

요즘 대기업 공채의 당락은 단연 면접이 좌우한다.

학교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논리적이면서도
소신있게 면접을 치렀던 덕인 것 같다.

본격적인 취업전선에 나선 건 봄학기였다.

경험이 재산이라고 믿고 여러 회사에 원서를 냈다.

그래서 면접을 치를 기회는 많았다.

처음에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 앞이라 주눅이 들어 속에 품고
있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횡설수설한 적도 많았다.

또 어떤 때는 지나치게 내 생각만을 강조하기도 했었다.

수차례 면접시험을 치르면서 면접에서는 소신과 생각을 논리있게
풀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또 현재의 경제환경과 사회흐름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갖춰야
당황하지 않게 된다는 점도 체득했다.

그래서 SK주식회사(당시엔 유공)로부터 면접시험을 치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간의 면접들은 이날의 "진검 승부"를 위한 스파링이었던 셈이다.

우선 면접시험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1년전에 입사한 선배를 만나 면접방식과 면접 요령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특히 찬반 양쪽으로 나누어 주제토론을 벌이는 1차 면접이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결론을 갖게 됐다.

드디어 결전의 날.

6인1조의 일원으로 "조기 영어 교육 과연 옳은가"를 주제로 한 토론에
임하게 됐다.

처음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어줍잖은 논리로 주장을 폈다가는 그대로 공격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면접위원이 수차례 재촉한 끝에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카투사 경험을 예로 들며 조기영어교육을 찬성하는 논리를
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즉시 손을 들었다.

주장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어학연수 경험을 이야기 했다.

언어교육은 그 나라 문화까지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모국어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아이들에게 의무화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주장을 폈다.

내 논리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여겼는지 다른 이들이 내 편에 섰다.

토론은 가열됐고 나는 여유를 갖고 토론을 주도 할 수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