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재경위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14일 전체회의에 회부된 금융감독기구
개편 법안은 정당과 국회 등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와 재경원 감독기관
여론 등을 의식, 당초의 정부안 곳곳을 칼질해 나온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법안을 "모자이크" "누더기" "결혼후 별거"에 비유하고
있을 정도다.

재경원은 올해 초부터 금융개혁을 추진하면서 중앙은행 중립화, 감독기구
통합과 자율성 확보를 추구했으나 국회통과절차를 밟으면서 이 두가지가
모두 심하게 훼손됐다.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한국은행에 넘겨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높이긴
했으나 행정권인 금융감독권을 정부가 환수하는 과정에서 금융감독위원회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어 재경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던 당초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한은과 현 금융감독기관들의 반발로 통합금융감독원은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로 변질됐고 직원들의 공무원화도 백지화됐다.

감독기관통합도 겉으로는 원장이 한명으로 바뀌는 수준으로 "별거"를 보장
하는 형태지만 "조직축소와 인원감축"의 공포앞에 정부와 감독기관노조간
불신과 긴장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당초 원안은 시행시기를 공포 3개월후로 잡았으나 야권의 요구에 따라
내년 4월1일로 변경 결과적으로 2개월가량 늦췄다.

야당은 이번 회기중 통과되더라도 2월말 출범하는 새정부의 주인으로서
재개정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의장은 "야당이 11개법안의 처리를 약속한 마당에
중장기과제인 2개법안을 굳이 현정부 아래서 처리하려는 이유를 모르겠으나
시행일에 유의해달라"고 말해 집권시 "재개정"을 시사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총리실에서 재경원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재경원과 재경위가 안에서는 다투지만 밖으로는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의원들은 조직원리상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재경원 산하에 두는 것이 합당
하다는 논리를 폈으나 재경원의 입김을 최소화, 감독기능의 독립을 꾀하려던
원안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게 됐다.

관치금융심화와 "공룡 재경원"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원안은 금융감독기관의 완전통합을 지향했으나 수정안은 독립성 특수성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경위 소위는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부칙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신한국당 차수명 의원 등이 13일 소위에서 독립성외에 특수성
전문성을 추가하고 "유지" 대신 "존중"으로 절충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특수성 전문성을 추가한 것은 3개 금융감독기관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지만 "존중"으로 바꾼 것은 재경원측의 감독기관별 "할거"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감독기관들에게는 어설픈 "자치권" 보장쯤으로, 재경원에게는
"껄끄러운" 제약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위원회 사무국의 경우 규모축소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특히 민주당 제정구 의원은 별도의 사무국을 설치할 것이 아니라 통합금융
감독원에서 실무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소위논의과정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경원측은 감독위 위원들이 대부분 비상근인데다 감독위 자체가 "공권력"을
다루는 기구이기 때문에 공무원 신분의 직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자본특수법인인 금융감독원 직원의 지위는 "소속직원의 2000년 1월
공무원화"를 삭제함으로써 공무원인 감독위 사무국 직원과는 다르다.

재경원은 사무국보다 격이 높은 "사무처"를 검토했다고 주장하며 사무국
축소요구에 맞섰다.

의원들은 사무국 설치를 수용하는 대신 재경원 금융감독위의 "횡포"를 걱정
하며 시행령 제정시 기구를 최소화할 것을 요구, 재경원측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냈다.

당초 한국은행이 금융감독원에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를 요청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도록 했던 정부안을 수정, 어떤 경우든 응하도록
했고 금융감독위원장의 임명도 당초 재경원장관 제청에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바꿨다.

의원들이 한국은행 은행감독원 등의 강한 반발을 고려한 것이다.

< 허귀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