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나는 전동차에 승객을 태우고 무리하게 운행하다 탈선사고를 빚은지
사흘만인 지난 15일에는 출근길 전동차가 선로에 방치된 공구 운반용 수레와
충돌, 탈선했다.
올들어서만 벌써 32번째 사고다.
언제 대형사고로 연결될지 몰라 시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서울시나 지하철공사 도시철도공사 모두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딱부러진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 사고는 전동차 기계결함이나 신호체계 장애 등의 기술적인
문제라기 보다 지하철공사 직원들의 해이해진 근무자세에서 비롯한 인재이기
때문에 더욱 심민들의 분노까지 사고있다.
지금까지 서울시나 지하철공사는 사고가 날 때마다 "지하철은 4만2천
종류의 부품이 결합돼 작동하므로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고 선진국에서는
사고가 더 많이 난다"는 식의 안이한 변명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잇단 인재성 사고로 이같은 변명은 더이상 통할수 없게
됐다.
근무기강 해이로 인한 원시적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 것은 서울시가
사고발생후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지 않는 등 미온적 수습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올들어 14번이나 발생한 "10분 이상 운행장애 사고"에서 책임임원에 대한
문책은 지난 8월 성수역 사고때의 가벼운 문책을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고
하니 지금까지 지하철은 무책임행정의 표본이었다고나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비난 여론이 워낙 거세자 김진호 사장을 비롯한 지하철공사 임원
5명이 전격 사퇴키로 했다지만 이미 고질화된 지하철문제는 경영진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사고때마다 누차 지적돼왔듯이
<>시설물은 노후돼 가는데 정밀 안전점검을 담당하는 전문조직이 없고
<>기관사 경력이 대부분 1~2년 밖에 안되며 <>열차운행을 감시 제어하는
종합사령실에 안전관리에 관한 하드웨어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등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기에다 전문기술인력은 태부족인 반면 역무인원은 넘쳐나는 불합리한
인력구조 때문에 사고가 나도 응급조치나 원인규명 조차 하지 못하고
허둥대기 일쑤다.
작년말 현재 빚이 2조6천억원이나 돼 파산지경에 이른 지하철공사의
역당 직원수가 평균 99명으로 도쿄 뉴욕 파리의 두배 수준이고 조직중복으로
환승역마다 역장이 2~3명씩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루빨리 비대한 역무조직의 군살을 빼고 전문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지하철 운영 주체의 위기관리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사고때마다 "안전결의대회"를 열어 사고재발방지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것만으로는 팽배한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울수 없다.
흐트러진 근무기강과 무뎌진 안전의식을 당장 바로잡고 기술적인
안전대책은 물론 지하철 운영체계와 조직관리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