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제도및 감독체계 개편은 80년대이후 이번까지 5차례나 추진됐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에도 금융개혁의 최대현안으로 부상했으나 정부와 한은의 갈등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혼선으로 또다시 무산되는 처지가 됐다.

개편논의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5공화국 초기인 지난 82년.

강경식 당시 재무부장관 주도로 재무부와 한국은행 실무자들간에 중앙은행
의 독립을 보장하되 한은의 감독기능을 정부로 이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도개편안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그러나 합의직전 한은에서 은행감독권을 분리하는 것은 받아들일수 없다고
반대함에 따라 무산됐다.

중앙은행 독립문제는 지난 87년 6.29 선언과 민주화 열풍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다시 터져 나왔다.

87년 11월 야당은 한은법 개정을 위한 단일안을 마련했다.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이 한은총재를 겸임하고 재무부차관을 금통위
당연직위원으로 하며 은행감독원을 한은으로부터 분리, 재무부 산하에
둔다는 것이 골자였으나 주장으로만 끝났다.

재무부는 89년8월 금통위의장을 재무부장관에서 한은총재로 변경하는 대신
재무부장관이 통화신용정책과 사전협의권 등을 갖는다는 내용의 독자법안을
추진했으나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한은의 강력한
반발로 좌절됐다.

중앙은행제도 개편은 다시 지난 95년2월 홍재형 부총리겸 재경원장관에
의해 전격적으로 추진됐다.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를 겸임하고 3개 감독원을 금융감독원으로 통합하되
통합감독원 산하에 금융감독위원회를 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해 7월1일 시행예정이었던 개편안은 한은등 관련기관들의 반발과
지자체선거를 앞둔 여당의 반대로 다시 실패했다.

올해 잇단 기업부도와 금융시장혼란으로 다시 도마위에 오른 중앙은행및
감독체계개편 논의는 금개위와 정부의 주도로 강력하게 추진됐다.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를 겸임하고 한은의 감독기능을 최소화하며 3개
감독원을 금융감독원으로 통합시켜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 산하에
둔다는게 골자였다.

그러나 초창기부터 은감원분리를 둘러싼 재경원과 한은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한데다 대선에서 악영향을 우려한 정치권의 눈치보기로 5번째 파동으로
막을 내렸다.

< 정한영 기자 >

[[[ 중앙은행 및 감독체계 개편논의 약사 ]]]

<>.82년 : -중앙은행 독립
-한은 감독기능 정부로 이관

<>.87년 :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 겸임
-재무부차관 금통위 당연직위원
-은행감독원 재무부 산하로

<>.89년 8월 : -금통위의장 한은총재가 겸임
-재무부장관에 통화신용정책 사전 협의권 등 부여

<>.95년 2월 :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 겸임
-은행 증권 보험감독원 금융감독원으로 통합
-감독원내에 금융감독위원회 설치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