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우리대학 명강의) 한국외대 '과학사'..열린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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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이 시대에 과학에 대한 교양을 쌓는 일은
지성인이 되는 필수조건의 하나일 것이다.
대학생이 과학을 배우는 방법은 세가지로 나눌수 있다.
첫째는 실생활에 응용할수 있는 지나친 실용위주의 기술교육.
둘째는 과학 그 자체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천문학을 조금씩
섞어 배워 과학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
셋째는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초점을 맞춰 과학발전과 사회발전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고찰하는 방법이다.
한국외국어대 박성래(58.용인캠퍼스 부총장)교수는 과학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마련인 외국어 대학생들에게 과학사를 가르친다.
지난 7일 강의내용은 고대 그리스인의 우주관.
그리스인들은 우주는 수성 금성 화성 등이 존재하는 겹겹의 하늘이 있을
것이고 이를 담당하는 신과 천사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가장 바깥의 불변하는 하늘은 "제1운동자"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인 "Prime
mover"를 일본사람이 직역해 이런 이름이 붙어졌으므로 마테오리치가 지은
"천주실의"에 나온 것처럼 "종동천"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동양인들은 가장 으뜸이 되고 맏이인 것에 마루 종자를 쓰니까 종동천이라는
용어가 동양인의 정서에 맞다는 것.
그의 저서에도 다른 과학사가들이 쓰는 용어인 제1운동자 대신에 종동천을
썼다.
이렇듯 그는 과학적 용어조차도 우리의 정서에 맞는 것으로 고쳐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교수는 특히 과학용어의 어원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또한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라고.
그는 서양의 과학사를 얘기하다 돌연 동시대 동양의 과학사를 논한다.
그리고 동양과학사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빼놓지 않는다.
박교수가 드는 많은 예화를 듣다보면 고정관념에 묶여 과학발전이 얼마나
더디게 진행돼 왔는가를 알수 있다.
서양의 기독교, 동양의 유교관이라는 독소가 얼마나 인간을 아둔하게
만들었는가를 인식하게 된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진공공간은 없다든가,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든가, 모든 원운동은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태양과 지구주위의
행성이 공전과 자전을 한다든가 하는 원리는 뉴튼이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대기까지 별 의심없이 믿어져 왔던 것이다.
강의를 듣다보니 겨우 2~3세기전부터 과학다운 과학으로 태동한 근대과학이
좀더 앞당겨 발전했다면 지금 인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는 물음표가
던져진다.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박교수는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과학적 지식을 옛날사람도 그대로 믿고 있었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선조들의 슬기가 어쩌면 그렇게 과학적인가 하고 감탄사만
되뇌이는 것은 모두 오해라는 것이다.
과학적 업적과 사회적 조건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측우기 금속활자 다라니경 자격루 혼의 간의 등을 발명한 조상의
슬기를 강조하면서 적어도 겨레과학의 우위는 17세기 이전까지 유지됐다고
강조한다.
그 우위가 17세기 이후 서양에서 이뤄진 엄청난 돌연변이적 과학혁명에 의해
깨지면서 또는 선조들이 서양문명을 늦게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의 사회수준
이 서구 선진국과 일본에 뒤지는 비극이 잉태됐지만 과학민족으로 자긍심을
가져도 충분하다고 일깨운다.
이런 자긍심이야말로 과학기술자에게 역사적 사명감을 불어넣어 갑절의
역량을 발휘케할 것이고 일반인에게는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과학의
성과를 칭송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할 것이라고 설득한다.
사회가 과학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가져야 선진사회에 도달할수 있다는게
박교수가 추구하는 최종의 주제다.
따라서 조상이 이룬 과학적 업적을 도외시한채 서자처럼 근대 서양과학의
우수성만을 추종하는 행태는 벗어버려야 한다고.
아울러 엘리트 과학자에 의한 연구결과만을 과학발전의 지표로 단정짓는
것은 오류며 사회전반의 과학중시풍토가 과학을 발전시키는 보다 중심적인
힘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 정종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
지성인이 되는 필수조건의 하나일 것이다.
대학생이 과학을 배우는 방법은 세가지로 나눌수 있다.
첫째는 실생활에 응용할수 있는 지나친 실용위주의 기술교육.
둘째는 과학 그 자체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천문학을 조금씩
섞어 배워 과학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
셋째는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초점을 맞춰 과학발전과 사회발전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고찰하는 방법이다.
한국외국어대 박성래(58.용인캠퍼스 부총장)교수는 과학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마련인 외국어 대학생들에게 과학사를 가르친다.
지난 7일 강의내용은 고대 그리스인의 우주관.
그리스인들은 우주는 수성 금성 화성 등이 존재하는 겹겹의 하늘이 있을
것이고 이를 담당하는 신과 천사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가장 바깥의 불변하는 하늘은 "제1운동자"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인 "Prime
mover"를 일본사람이 직역해 이런 이름이 붙어졌으므로 마테오리치가 지은
"천주실의"에 나온 것처럼 "종동천"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동양인들은 가장 으뜸이 되고 맏이인 것에 마루 종자를 쓰니까 종동천이라는
용어가 동양인의 정서에 맞다는 것.
그의 저서에도 다른 과학사가들이 쓰는 용어인 제1운동자 대신에 종동천을
썼다.
이렇듯 그는 과학적 용어조차도 우리의 정서에 맞는 것으로 고쳐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교수는 특히 과학용어의 어원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또한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라고.
그는 서양의 과학사를 얘기하다 돌연 동시대 동양의 과학사를 논한다.
그리고 동양과학사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빼놓지 않는다.
박교수가 드는 많은 예화를 듣다보면 고정관념에 묶여 과학발전이 얼마나
더디게 진행돼 왔는가를 알수 있다.
서양의 기독교, 동양의 유교관이라는 독소가 얼마나 인간을 아둔하게
만들었는가를 인식하게 된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진공공간은 없다든가,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든가, 모든 원운동은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태양과 지구주위의
행성이 공전과 자전을 한다든가 하는 원리는 뉴튼이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대기까지 별 의심없이 믿어져 왔던 것이다.
강의를 듣다보니 겨우 2~3세기전부터 과학다운 과학으로 태동한 근대과학이
좀더 앞당겨 발전했다면 지금 인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는 물음표가
던져진다.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박교수는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과학적 지식을 옛날사람도 그대로 믿고 있었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선조들의 슬기가 어쩌면 그렇게 과학적인가 하고 감탄사만
되뇌이는 것은 모두 오해라는 것이다.
과학적 업적과 사회적 조건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측우기 금속활자 다라니경 자격루 혼의 간의 등을 발명한 조상의
슬기를 강조하면서 적어도 겨레과학의 우위는 17세기 이전까지 유지됐다고
강조한다.
그 우위가 17세기 이후 서양에서 이뤄진 엄청난 돌연변이적 과학혁명에 의해
깨지면서 또는 선조들이 서양문명을 늦게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의 사회수준
이 서구 선진국과 일본에 뒤지는 비극이 잉태됐지만 과학민족으로 자긍심을
가져도 충분하다고 일깨운다.
이런 자긍심이야말로 과학기술자에게 역사적 사명감을 불어넣어 갑절의
역량을 발휘케할 것이고 일반인에게는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과학의
성과를 칭송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할 것이라고 설득한다.
사회가 과학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가져야 선진사회에 도달할수 있다는게
박교수가 추구하는 최종의 주제다.
따라서 조상이 이룬 과학적 업적을 도외시한채 서자처럼 근대 서양과학의
우수성만을 추종하는 행태는 벗어버려야 한다고.
아울러 엘리트 과학자에 의한 연구결과만을 과학발전의 지표로 단정짓는
것은 오류며 사회전반의 과학중시풍토가 과학을 발전시키는 보다 중심적인
힘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 정종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