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말기 탄광으로 강제징용됐던 73세 노인이 "못배운 한을 풀기위해"
네번째로 대학입시에 도전, 화제가 되고 있다.

98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 전국 최고령 응시자인 이근복씨(서울 마포구
아현 2동)는 수능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서울 서부교육청에서 1200235라고
적힌 수험표를 교부받은데 이어 서울 서연중에서 있은 수험생 예비소집에도
손자, 손녀뻘되는 수험생들 틈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들 4명과 손주 5명까지 둔 이씨가 만학의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것은
"죽기 전에 배우지 못한 한이나마 풀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때문.

1924년 경기도 강화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 치하와 해방 뒤의
혼란 속에서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그는 태평양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4년 11월 일본 큐슈지방의 탄광으로 끌려가 해방까지 9개월동안 혹독한
강제징용 생활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기도 했다.

징용에서 돌아와 고향을 지키며 묵묵히 농사일만 하던 그는 64세가 되던
지난 88년 "더 늦으면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못배운 한을 풀지도 못하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인 만학의 길로 나서기 시작했다.

늦공부를 시작한지 불과 3년만인 지난 91년과 92년 2년동안 국졸, 중졸,
고졸검정고시를 모두 통과했다.

이후 94년과 95년 잇따라 대입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대입학원에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석, 수능시험을 준비해왔다는 이씨는
"농대에 진학해서 농촌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