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이 사라지고 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신작을 만들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다 세계연극제의
부진으로 연극인들의 창작의욕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에 공연됐던 작품들이 다시 등장하고 일부 히트작들의
장기공연이 준비되고 있다.

현재 공연중인 주요작품은 국립극단의 "파우스트" (24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 로얄씨어터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마차" (12월 28일까지
샘터파랑새극장), 화동연우회의 "세상은 요지경"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단 민예의 "우리가 서로를 알게된 순간" (30일까지
마로니에극장),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 (12월28일까지 산울림소극장),
극단 진의 "돈내지 맙시다" (98년 3월2일까지 하늘땅에서) 등.

괴테, 테네시 윌리엄스, 몰리에르, 아르투어 슈니츨러, 사뮤엘 베케트,
다리오 포 등 외국작가들의 원작을 그대로 번역하거나 우리 실정에 맞게
일부 번안한 작품들이다.

특히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임영웅씨가 1969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후 지금까지 무려 10번에 걸쳐 재공연한 작품이다.

"파우스트"도 국립극단에서만 세차례 공연했으며, "돈내지 맙시다"
"세상은 요지경" 등 다른 작품들도 크고 작은 극장에서 수차례 공연됐었다.

이런 현상은 뮤지컬쪽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서울뮤지컬컴퍼니의 "사랑은 비를 타고" (12월31일까지 인간극장),
같은 극단의 "쇼코메디" (30일까지 에술의전당 토월극장), 극단 대중의
"넌센스" (무기한 인켈아트홀에서), 극단 예우의 "체인징파트너"
(98년 2월1일까지 연가소극장) 등은 지난해와 올해의 히트작을 그대로
다시 올리는 것들이다.

에이콤이 12월중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할 "명성황후"도
95년에 선보여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이다.

창작극은 즐거운사람들이 기획한 "벼룩시장"과 서울예술단의 "김삿갓"
정도다.

현재 서울에서 공연되고 있는 창작극은 전체의 30~40% 정도 (연극협회
추산).

세계연극제 (9월1일~10월15일)때 시작돼 지금까지 공연중인 작품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이는 지난해 창작극이 63% (1천8백50편중 1천1백70편)였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연출가 이윤택씨는 "서울연극제가 끝난후 창작극이 전멸했다"며 "이는
큰 기대를 모은 세계연극제가 일반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등 실패로
끝나면서 연극인들의 의욕이 꺾인 탓"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수 연극협회이사장은 "경기침체로 기업체의 후원이 줄어들어
안정적인 수입 확보를 원하는 각 극단에서 당분간 창작극 대신 관객확보가
용이한 외국작품이나 예전에 흥행했던 작품을 재공연하거나 장기공연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재공연과 장기공연은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검증을 거친, 재미있고
수준높은 작품을 감상할수 있다는 면에서 긍적적으로 볼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제작형태는 가뜩이나 얕은 한국연극의 기반 전체를
파괴하는 안일한 태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홍사종 정동극장장은 "연극인에겐 불황이든 호황이든 수준높은 연극을
만들어낼 책임이 있다"며 "비록 세계연극제가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창작의욕을 발휘,관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려는 연극인들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