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수는 70이 넘었어도 젊고 맑은 영혼을 가진 여자를 원한다.

자기의 딸처럼 대화도 잘 되고 운동도 함께 하고 침대에도 갈 수 있는
아가씨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안성맞춤의 여자가 어디 있을까? 어떤 바이러스에도 감염
안 된 청결한 여자....

그러다 생각하니 다른 여자와 동침해본지 5년이 넘었다.

에이즈의 가공할 공포는 그를 아주 재미없는 노인으로 만들었다.

덕택에 젊은이 못지않은 정력으로 삼일 컴퓨터를 설립했고 미국
A컴퓨터사의 부품을 들여다 만든 의료기기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연간 매출이 엄청 뛰었다.

정열을 여자에게 쏟을 때 사업이 더 잘 되기도 하고 정력의 세이브가
빠져나가 구멍이 나고 실수를 할 때도 있었다.

연애를 하면 조금은 루즈해진다.

자신 같이 무슨 일에나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공격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일장일단의 큰 획을 긋는 것이 연애사건이다.

그는 은근히 영신이 구해준다는 애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관심이라기 보다 기대라고 해야겠다.

너무 오래 고자처럼 지냈다.

그는 이제 슬기로운 딸에 의해 늘그막에 연애를 하려고 한다.

헛소리를 하거나 안 될 일을 말만 앞세우는 영신이 아니니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본다.

영신은 강은자에게 외모가 깨끗하고 귀여운 아가씨를 한명 부탁한다.

일주일에 한번 근무하는 수행비서가 그 명칭이다.

은자는 그녀의 말을 듣고 우선 자기 슈퍼에 근무하는 미스 황을 떠본다.

그 아이는 돈돈돈 하면서 약간의 바람기가 있는 스무살짜리 였다.

나이와 직업에서 우선 영신의 오케이를 받았다.

영신은 아버지를 위한 채홍사 노릇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기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해드릴 수 있는 자식이어야
된다고 합리화시키지만 찜찜한 것은 역시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그 정도면 재벌 남편의 와이프로서 손색이 없다.

요새는 종교에 탐닉해서 사실상 아버지와 오누이같은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

김치수는 이제까지 이만큼 열심히 살았으니까 좀 더 인생을 엔조이할
자격이 있다.

그냥 늙어가기는 너무 억울하다.

영신은 미스 황을 우선 만나본다.

그녀는 여러 면에서 미스 황의 됨됨이를 파악하고 싶다.

영신은 다방에서 그 애와 마주 앉았는데 휠라의 반바지와 휠라의 싸구려
티를 자랑스레 입고 있었다.

그것도 진짜가 아니고 가짜 휠라였다.

"아가씨가 참 마음에 드네요.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번 골프장이나 기타
다른 곳에 놀러가시는데 아가씨가 동행해주면 돼요. 명칭은 수행비서예요.
아가씨가 쉬는 날이 언제지요?"

"슈퍼 캐셔는 수요일에만 쉬어요. 제가 하루 근무하면 얼마를 주실
건대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