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 <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

현정부의 임기가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경제담당부총리를 위시한
경제정책결정 및 집행을 관장하는 정부 주요경영의 경질이 있었다.

그것이 촌각을 유예할 수 없는 경제위기감 특히 외환 금융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신경제팀은 취임벽두에 "금융시장 안정 및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제시하였다.

그 골자는 금융산업 구조조정의 강력한 실행, 부실채권정리기금의 10조원
으로의 확대, 1일 환율변동폭의 10%로의 확대 등으로 되어있다.

현실적으로 상정해 볼 수 있는 대책으로서는 대체로 설득력을 지닌 타당한
제안이라고 본다.

이 종합대책에는 장단기대책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정치적 시기상황에
구애하지 않는 강력한 실천의지가 요청될 따름이다.

현재의 경제난국은 그 소인이 발생된 시기를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WTO체제
출범때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할 것 같다.

당시 국제적 온정주의가 종식되고 완전한 상호주의 개방주의 체제로
전환된, 국제적 경제여건의 혁명적 변화에 직면하면서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에 사로잡혔었다.

획기적인 경제구조개혁등을 통한 경제체질 기업체질의 강화없이는 무한
경쟁을 감내할 수 없으며 국민경제파산은 불가피한 것으로 모두의 인식이
모아졌었다.

또한 그뒤 몇차례에 걸친 경제위기설이 제기되곤 하였다.

그러나 외생적 요인에 의해서 경기가 일시적 간헐적으로 호전되기도 했던
탓이었는지, 또는 위기설이 지나치게 자주 제기된데서 오는 위기불감증 때문
에서인지, 이렇다 할 실질적인 구조조정 성과나 기업체질 강화효과는 눈에
띄지 않은채 시간을 흘러온 느낌이 든다.

독일이 통일되기 오래전에 서백림에 들렀을 때 출장간 동료들과 함께
생맥주집에 들렀던 적이 있다.

생맥주를 주문했는데 시간이 꽤 되었는데 가져오지 않기에 가보니 주인이
거품이 나면 그것을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채우곤 하며 거품없이
맥주 정량을 글래스 가득히 채우는 것이었다.

작은 일이지만 이것이 견실한 독일경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져 감동한
일이 있다.

거품 하나 하나를 걷어내며 실질을 다지는 그들의 경제가 부럽기만 하였다.

우리는 최근년간에 실질의 축적은 적고 거품이 걷어내지지 않은채 쌓이고
쌓인 글래스의 경제를 이끌어온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도 해본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고비용 저효율의 극복에 의한 저비용 고효율
체제로의 대치가 정책적으로 강력히 독려되기도 하였다.

고비용이나 저효율은 양쪽 모두에 정부가 해야할 부분과 기업이 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또한 비용은 효율을 결정하는 큰 요인이 되지만, 편의상 비용과 효율을
분리해서 생각해 보면 비용의 측면은 아무래도 정부가 해결해 주어야 할
몫이 많고 효율의 측면은 기업의 자율적 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금리정책 지가정책 임금정책 등 정책적 노력을 통해서 고비용
극복을 선도해야 할 것이고, 기업은 강력한 경영혁신 기술혁신의 자위적
노력을 의지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저효율 극복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업이 그렇게도 갈망하고 정부가 그렇게도 강력히 천명한 바 있는
규제완화의 문제는, 규제없는 시장경제는 파탄한다는 역설도 있듯이 시장
경제의 마비를 보완하고 공정거래 촉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규제는 분명히
선을 그어 엄격히 시행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조속히 선명하게 폐지 내지
완화하는 용단이 있어야만 하겠다.

현재 통화 금융의 불안은 아시아지역의 공통적인 현상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IMF나 일본 등의 지원으로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제국은 어느정도 안정의 징조를 보이고 있는 반면, 금융체제가 불안한 한국
의 동요가 자못 커지고 있다.

그리고 작금은 지원국인 일본의 금융동요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우리는 불량채권의 해결, 외환의 안정 등 금융체제불안을 해소하고 경제
구조 및 금융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경제정책의 투명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긴박한 국면에 처해있다.

현정부는 남은 임기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시기적인 불운이었든 또는
정책의 오류였던간에 현재 전개되고 있는 경제적 위기상황에 대해 결자해지
의 심경으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경제정책의 수단이란 결국 재정수단과 금융수단으로 귀착된다.

이 수단이 마비된다면 경제정책은 그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재정안정 금융안정 특히 후자는 경제정책의 효율성
을 위해서 절체절명의 막중한 과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도 정부의 정책노력에 대해서 정치를 초월한 협력이 요청
된다.

선거전략때문에 국민이 그렇게 염원했던 정치개혁법안은 고사하고 금융
개혁법안이 처리되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정치적 소모전으로 말미암아 경제위기는 정부와 국민에게 맡겨지고 정치권
으로부터는 피안의 불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경우, 이러한 과정에서 들어선 정부라면 후일에
현정부 못지 않은 큰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경제문제는 정권을 초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경제정책의 시의성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교과서적인 말로, 첫째 상황에 대한 인식이 신속 정확해야 하고, 둘째로
정책수단의 동원이 신속 충분해야 하고, 셋째로는 정책효과가 신속 적절하게
나타나야 한다.

정책의 시의성의 결여는 상황극복에 역행하는 결과를 자아내기까지 한다.

현재 상황의 악화는 필요한 정책의 시의성의 결여 즉 정책적용의 실기때문
이라고 지적하는 측도 있다.

이번에 발표된 "종합대책"에 관해서는 이는 IMF지원금융을 배제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얻는다면 그이상 바랄
것이 없거니와, 이제 IMF지원이 필요한 국면이라는 의견이 유력하게 제기
되고 있음을 정책당국은 유의해 주기바란다.

만약 정책적 판단이 그 필요성에 도달된다면 멕시코의 사례를 연상한
자존심손상의 문제나 일련의 부대조건에 의한 구속은 있겠으나 경제적
현실적 필요성의 대전제에 따라 실기는 안해야 되겠다.

고도의 적합성 신뢰성 시의성 효율성을 지닌 정책의 채택 적용에 의해서
하루 속히 사태의 호전과 더불어 정책의 국제적 국민적 공신력이 회복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