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보면 어이없는 협잡사기사건이 많다.

1920년대의 어느 여름철 런던에서는 아서 퍼거슨이라는 스코틀랜드인이
미국 관광객들을 속여 트라팔가광장의 넬슨 제독 기념탑을 비롯
국회의사당과 버킹엄궁전을 팔아 거액을 챙겼다.

그에 재미를 붙인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서는 한 목장주에게
백악관을 세놓아 1년치 전세금을 챙긴데 이어 뉴욕에서 한 호주인에게
자유의 여신상을 팔아먹으려다 사직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프랑스정부의 공공건조물담당 고위관리 빅토르 루스티히백작도 두번에
걸쳐 에펠탑을 사기 경매로 팔아먹었으나 당국의 수사망을 벗어났다.

한국에도 대동강물을 팔아 거금을 거둬들인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구한말 고종때의 협잡꾼으로 유명한 궁내부 주사
박필원의 실화는 실소를 머금게 한다.

당시 한국에는 외국인 관광단이 몰려들었다.

관광단 안내 직책에 있던 박필원은 어느 날 관광객들의 귀에 솔깃한
말을 했다.

"이 나라에 왔다가 풍물이나 보고 그냥 가기엔 서운한 일이오. 임금을
만나야 할게 아니오?"

이에 모두 동의하는 것을 본 그는 "그건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오.
궁녀와 시신들을 동원해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박필원은 관광객들로부터 거금을 거둬넣고 어느 날 궁궐 근정전에
그들을 모이게 했다.

그는 그들에게 돌기둥을 향해 부복하라고 일렀다.

그가 한참뒤 그들에게 머리를 들라고 했으나 임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알현은 끝났습니다.

그만 가시오"라고 말했다.

그들이 이에 항의를 하자 그는 "우리나라 임금 뵙는 법은 이렇습니다"
라고 잘랐다.

이번에는 정체불명의 한국사기꾼 일단이 남태평양 섬나라인 통가의 왕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일이 뒤늦게 알려졌다.

바닷물을 천연가스로 만드는 엉터리 기술을 미끼로 이 나라를 찾은
사기꾼들이 왕에게 가짜 상을 수여하고 바닷물의 천연가스화 공장의
기공식을 가졌는가 하면 국빈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금융위기로 대외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마당에 알려진
국제사기극이라서 가슴을 더욱 무겁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