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아픔에 대한 보고서 2편이 안방극장을 찾는다.

토니 솔론즈 감독의 미국독립영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와 이브 로베르
감독의 프랑스영화 "마르셀의 여름"이 그것.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가 성장의 아픔을 냉정하고 혹독하게 묘사했다면
"마르셀의 여름"은 "사랑과 행복이 가득찬 우리집"을 배경으로 따뜻하고
정겹게 그렸다.

"사람들은 어린시절을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그렇지 못했고 그 시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뿐이다.

다만 지금은 지옥같은 그 시절을 잊을수 있어 사람들은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토머스 베른하르트.

"인형의..."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다.

영화에서 느끼는 감동의 원천중 하나는 작품속 등장인물에 얼마나 공감할수
있느냐에 있다.

그 정도는 물론 보는 사람의 경험에 의해 좌우된다.

두 영화중 어느쪽에 더 감동하느냐에 따라 베른하르트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가려봄직하다.

"인형의..."의 주인공인 11세의 소녀 돈 위너는 뭐 하나 잘난 것 없는
"미운 오리 새끼".

돈의 가정은 도입부에 등장하는 단란하고 화목해 보이는 가족사진과 달리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살벌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전투의 장이다.

둘째인 돈은 공부벌레인 오빠 마크와 발레복을 즐겨 입는 귀염둥이 동생
미시에 밀려 부모의 관심밖이다.

학교에서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선생님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아이들에게도
놀림감이 된다.

또래의 소녀같이 꿈많고 이성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돈.

오빠친구인 잘 생기고 노래도 잘하는 스티브를 짝사랑하나 외면당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문제아 브랜든마저 떠나버린다.

원하지 않는 꾀꼬리합창단의 버스여행에 참가한 돈.

흥겨운 아이들의 노래소리는 점차 줄어들고 돈의 헉헉대는 목소리만
남는다.

"어서 이 시절이 지나갔으면" 돈은 끝내 "백조"로 거듭나지도 못하고
이렇다할 복수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어진 삶속에서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고 꿋꿋이 살아나간다.

잔인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성장기를 그렸지만 영화는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재기발랄하고 유쾌하고 장난기로 가득차있다.

우스꽝스러움을 통해 감독은 어른이 만들어낸 "인형의 집"의 실체를
들추어낸다.

96년 선댄스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마르셀의 여름"은 "마농의 샘"의 작가 마르셀 파뇰의 자전적 이야기.

마르셀은 유아때 글을 깨칠만큼 똑똑한 아이.하지만 "아이답게 커야
한다"는 어머니의 자상한(?) 배려에 따라 마르셀은 책읽기가 금지되고
몽상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한다.

마르셀의 이같은 세상읽기는 시골에서 보낸 "여름휴가"를 통해 변한다.

마르셀에게 아버지는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존재.

그 아버지는 사격술도 형편없는데다 이모부에 의해 질질 끌려다닌다.

더욱이 아버지와 어른들이 자신을 떼놓기 위해 서로 짜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영화는 마르셀이 화목한 가정의 틀안에서 아버지를 평범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을 푸른 자연을 담은 넉넉한
영상으로 그려낸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