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유통업체들엔 올해 크리스마스도 예년처럼 "블루크리스마스"가
될 전망이다.

요즘 월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사상 최저수준의 실업률과 함께 장기
호황으로 크리스마스특수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시즌을 위해 유통업체들은 각 매장을
크리스마스선물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으로 차곡 차곡 채워가고 있다.

스탠더드&푸어스산하 컨설팅업체 DRI 자체 조사에 따르면 미국 수입업자들
은 올 크리스마스시즌을 위해 2백억달러이상의 물품을 수입했다.

지난 10년만에 최대 규모다.

업계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유통업체들이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칼 스테이드만 매니지먼트 호라이즌스사(유통컨설팅전문업체) 수석이코노미
스트는 "특수에 대한 기대로 유통업체들은 들떠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실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 유통업체를 울상짓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소비자들의 소비행태가
변하고 있다는 것.

커트 사몬 어소시에이츠(유통컨설팅회사)가 최근 실시한 "향후 1년간
지출의 최우선분야는 어디인가"라는 소비자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대부분은 투자와 저축을 첫번째로 꼽았다.

그 다음 항목은 여행, 외식인 것으로 조사됐다.

선물 등 물건구입을 위한 지출은 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나 있었다.

여성소비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별도 조사에서도 투자와 저축이 최우선으로
들었다.

경기활황과 소득증가에도 불구하고 미 소비자들은 이번 크리스마스시즌중
흥청망청쓰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미국의 주소비계층이 베이비붐세대라는 것도 크리스마스특수를
사라지게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 세대의 소비행태는 내구재구입보다는 여행 등 여가활동에 대한
지출을 늘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DRI조사에 따르면 전체지출중 내구재구입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79년 21%에서 지난해 15%로 떨어졌다.

반면 여행 등 서비스분야지출은 22%에서 27%로 늘어났다.

최근들어 두드러진 부익부 빈익빈현상도 유통업체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컨설팅회사 "서비스 인더스트리 리서치 시스템"사의 크리스토퍼 오링거
최고경영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크리스마스시즌의 최대 수요층인 10세미만의
아이를 가진 가정의 소득은 오히려 크게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또 중상층 가계는 부채가 거의 없지만 중하층 가정은 빚에 쪼들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여유가 있는 중상층은 선물구매쪽보다는 여행 등 여가활동에 많은
지출을 할애하고 있다.

유통업체들의 어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 업체는 여러 요인으로 큰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잘 알면서도
물품을 대량으로 쌓아놓고 손님맞을 준비를 해 야한다.

고객들을 경쟁업체들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특수실종으로 크리스마스용 물건들을 제때 다 팔아치우는게 불가능
하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결국 시즌후 대폭적인 가격인하를 통해 처분해야 하기때문에 유통업체들은
재고부담, 순익감소 등 이중 삼중의 "크리스마스"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백화점들의 지난해 4.4분기 매출이 95년 동기대비 13.8%나 줄어든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올해도 산타클로스는 이들 "우울한" 유통업체들을 위해 큰 선물보따리
를 준비하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 김수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