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원은요, 몸파는 일만 아니면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할 생각이구먼요.
설마 노인 분이 저를 덮치지는 않겠지요?"

"그런 염려는 하지마. 그 분은 자기 몸을 무척 아끼는 분이니까 네가
오히려 꼬릴쳐도 싫다 하실 거다.

그냥 일주일에 한번 동행해서 놀아드리면 되는 거야"

설명은 은자가 다 한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기의 삐삐번호를 적어주고 가버린다.

은자는 미스 황이 가고나서 한참을 웃다가 영신의 손을 잡으면서, "얘,
우리가 채홍사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네 효성이 지극해서 내가 감동을 받았단다.

너는 정말 효녀다"

"나는 요새 좀 뻔뻔해진 기분이야.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들을
물흐르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운단다"

그녀는 자기 변명을 한다.

채홍사의 역할은 아무래도 그녀에게 부담스럽다.

"누가 과자를 달라고 할때 밥을 주는 것보다는 그가 원하는 것을 주고
싶고, 아버지는 내가 연애하는 것을 너무 부러워하시면서 가끔 굉장히
쓸쓸해 하시거든"

"네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재산을 조금이라도 쓰고 싶을 거야.
그리고 또 그렇게 쓰도록 주선해드리는 것이 합리적인 효도일 것도 같구.
스스로 못하시니까 네가 약간만 도와드리면 아주 행복해 하실 거다.

회장님께 나한테 예쁜 아가씨 중신 선 복채를 놓아주라고 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니?"

농속에 진담이 있다.

"걱정 마.그런데 나는 그 애가 혹시 아버지의 정신을 홀랑 빼앗고 건강도
나쁘게 할까봐 걱정이다"

"그건 각오해야지. 네 아버지같이 적극적이고 전력투구하는 분은 연애도
되게 멋있게 하실것 같아"

"아무튼 두고 보자. 그 애가 머리가 좀 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건강까지 챙겨줄 수 있었으면 해"

"얘, 물 좋고 정자 좋고 어떻게 다 갖추니. 스무살짜리 비서를
구해드렸으니 그런 호박이 어디 있니"

"우리는 이제 영 날 샌 나이인것 같다.

여자나이 50이면 이제 날 샌것 아냐?"

"너에게 콜라병 던지던 그 시골 남자는 잘 있니?"

"응. 그 녀석은 이제 자기마누라 먹여살리고 슈퍼마켓으로 성공하고
싶어서 정신이 없어. 그래도 그 때가 재미있었던 것 같아. 나 이젠 술도
끊고 시만 쓴다.

그러니까 점점 더 인생이 재미없어. 시만 써가지고는 안 되는게
있더라구"

"어쩐지 쓸쓸해 보여.슈퍼에서 손을 떼니 심심하기도 하겠다. 연애를 해"

"네 아버지 애인은 내가 찾았으니까 네가 내 애인을 찾아줘"

"너는 재즈바의 여왕이었잖니?"

"그 곳은 무시무시한 데야. 에이즈의 소굴이야. 동성연애자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무시무시했단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