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지난 24일 내놓은 "새정부의 정책과제"라는 보고서는 21세기
경제-사회 청사진과 국가발전 전략을 종합한 것으로 경제회복을 위한
민간경제계 나름의 진단과 처방이 집약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특히 이 보고서가 관심을 끄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원을 요청할
정도로 현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로 판가름나면서 모든 경제주체들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앞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최초의 종합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는 정부가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를 제때 개혁하지 못한데다 정부의 정책 실기가 누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시장경제원리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두가지 기본틀을 토대로 대내외 경쟁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기회있을 때마다 재계는 물론 정부도 강조해온 말이다.

그런데도 이같은 원론적 주장이 지금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설득력을
갖는 것은 문민정부 5년 내내 실천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책임을 따지자면 기업도 국민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 책임의 대부분은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타파하자는 민간경제계의 요청을 묵살해온 정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올들어서만도 금융대란이 우려된다며 여러차례 금융안정책을 주문했지만
이미 위기관리능력을 상실한 정부는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호미로 막을수도
있었던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할 사태를 불러온 것이 아닌가.

우리가 새삼 시장경제원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제 정부주도의 직접규제에
의한 경제운영은 한계에 이르렀음이 현 경제위기에 의해 명백히 입증됐기
때문이다.

내년에 탄생할 새정부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돼야 한다.

민간의 경제활동을 직접규제하는 방식에서 탈피, 땀흘린 만큼 보상받는
시장경쟁원리를 정착시켜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북돋우지 않고서는
이 위기를 벗어날수 없다.

전경련의 이번 보고서에는 <>근로기준법을 대신할 근로계약법 제정
<>30대그룹 지정제도 폐지 <>은행소유제한 완화 <>그린벨트규제 대폭완화등
현 경제운용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내용들도 많아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견인차였고 앞으로도 위기극복의 최전선을
맡아야할 기업들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내놓은 종합적인 액션플랜이라는
점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이 많다.

전경련은 이례적으로 이 보고서를 3당 대통령후보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한다.

세 후보 모두 입으로는 시장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막상 집권하면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는 시행착오의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치권은 전경련의 요구를 "대선정국을 이용한 재계의 목소리 높이기"
쯤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연구검토하여 정당의 경제강령을
만들거나 새정부의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최대한 반영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