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웅이 프로가 된 날은 쾌청했고 만사가 잘 풀려가고 있었다.

지영웅은 해냈다.

그리고 그린필드 프로시합 장소에서 숨을 죽이고 보고 있던 영신은 눈물이
흘렸다.

영신은 그가 프로타이틀을 거머쥐었을때 너무도 흥분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흥분할줄 알았는데 너무 긴장해서 기운이 쇠진해졌는지
지영웅은 넋이 빠져서 자기의 이름을 부를때 대답도 못 하고 멍청해져서
로댕의 그림처럼 나무 그늘에서 땀을 닦고 있었다.

"빨리 나가세요. 호명 되었어요. 상패를 받아야죠"

오히려 모든 지휘를 영신이 해주었다.

그 자리에는 핼쓱해진 권옥경도 있었다.

영신은 그녀가 누군지 몰라서 그냥 아는 여자려니 했는데, 지영웅의 목을
끌어안고 우는 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질투심 같은 것을 느낀다.

돌아오는 길에 영신은 그에게 한마디 한다.

승리에 들떠 있는 그였기 때문에 무심결에 한 말인데 반응이 의외로
날카롭다.

"옛날에 알았던 여자야?"

"영신 자기답지 않게 질투를 하는 거요?"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녀는 지영웅의 옆 얼굴을 들여다보고 입을 꼭 따물고
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마음에 드는 대답이 되겠습니까, 지프로님?"

그녀의 억양은 약간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지영웅은 갑자기 골을 팍 낸다.

"내 과거가 그렇게 문제가 되나?

영신도 내 과거를 가지고 나를 헐뜯고 싶은 적이 있소?"

너무나 의외의 반응에 영신은 그저 놀랍다.

그에게 안 좋은 후문들이 따라다녀도 그녀는 그런 소문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없다.

너무나 뜻밖의 반응이다.

지영웅은 자기의 더러운 과거를 건드리면 가장 펄펄 뛴다.

이제 그는 모든 고통과 역정을 뚫고 성공했다.

하필이면 왜 권옥경이 나타나서 영신 앞에서 목을 껴안으며 요란을
떨었을까?

재수 없다.

권옥경은 충분히 그럴 만한 배짱이 있는 여자다.

그러나 지영웅은 영신에게 과거의 어떤 작은 부분도 노출되는 것이 견딜수
없다.

"정말 궁금하네요. 그 여자는 누구에요?

저를 의식하고 일부러 설치는것 같았어요"

"나에게 골프 레슨을 받은 여자인데 나를 귀찮게 따라다니더니 결국은
찬스를 잡아서 한 펀치 호되게 갈기는군"

그는 진정 쓰디쓴 기분이다.

베앰베라고도 불리는 비앰더블류 한대의 몫을 간단히 해치운 거다.

"남 성공해서 정신 없는 순간에 왜 재를 뿌릴까?"

그는 정말 기분이 아주 우울하다.

과거의 그림자란 그렇게 쉽게 가셔주지 않는 것인가?

"그 여자가 당신을 너무 좋아하는가봐요.

그러니까 나를 의식하고 그렇게 요란을 떨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