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후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기간과 그 이후의 상황으로
나눠 실명제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선 IMF관리라는 비상시국에서는 실명제와 이에 바탕한 금융소득종합과세
를 한시적으로 유보함으로써 자금의 흐름을 원활히 하자는게 김후보의 공약
이다.

김후보는 집권할 경우 1년반안에 IMF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단의
경제회복대책을 수립,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김대중정부"에서는 경제
회복 이후에나 실명제존폐문제가 재론될 듯하다.

물론 경제회복이후의 실명제문제에 관한 김후보의 공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긴급명령형태의 실명제를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통해 금융자산의 실명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김후보는 또 자금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 금융자산에 대한 비밀보장을
철저히 하고 은행입출금내역에 대한 자금출처조사및 국세청통보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후보는 이와함께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대한 출자금, 성업공사가 발행하는
채권및 무기명장기저리산업채권 매입자금 등의 경우 자금출처조사를 면제,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명계좌도 판례대로 허용해야 한다는 쪽이다.

이밖에 실명제를 전제로 한 금융소득종합과세와 관련, 김후보는 차명거래가
많은 상황에서 선의의 실명거래자 2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과세는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며 전면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후보는 실명제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 "돈은 햇볕을 싫어한다"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현행 실명제처럼 돈의 출처와 실명거래를 지나치게 추궁하고 압박해서는
자금이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지금과 같은 경제침체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김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측이 "김대중 비자금설"을 폭로하면서
김후보의 친인척계좌를 샅샅이 조사, 공개한 것과 관련해 금융자산의 비밀
보장을 유별나게 강조하고 있다.

양당이 김영삼정부 아래서 자금의 "과거"를 추적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사정"의 도구가 됐던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국민회의의 공조파트너인 자민련이 실명제 "폐지"를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유보-보완의 두 단계로 나뉜 김후보의 실명제에 대한 입장이 "보완"
단계에 가서는 자민련측의 입김으로 "무기한 유보" 형태로 사실상 "폐지"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 허귀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