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라.

경제불황으로 춥고 우울한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일까.

늦가을 극장가에 눈물이 번진다.

통쾌한 할리우드 액션이나 코믹액션물에 몰리던 관객들이 애절한
멜러영화로 몰려들고 있다.

뇌종양에 걸려 죽는 남편이 혼자 살아갈 아내를 위해 편지를 남긴다는
사연(편지), 네살짜리 소녀가 죽은 엄마를 그리다가 무덤가에서 엄마의
환영을 만난다는 얘기(뽀네뜨), 같은 고향에서 자란 세 남녀가 20여년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애절한 사랑(깊은 슬픔)등 따뜻하고 순수한 감성에 호소하는
영화들이 "울고 싶은" 관객들에게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고 있는 것.

"편지"(제작 아트시네마, 감독 이정국)의 히트는 극장가의 최대 이슈.

개봉 1주일도 안돼 서울 9만, 전국 35만의 관객을 확보해 할리우드대작
못지 않은 흥행성적을 냈다.

개봉관 수도 서울 15곳 전국 60곳으로 어지간한 할리우드영화를 넘는 수준.

이런 추세로 나가면 관객 올해 한국영화 최대히트작 "접속"(1백20만명)을
추월할지 모른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기획사 신씨네측은 이런 상황을 예감했다고 말한다.

"개봉(토요일) 3일전 예매 첫날 3천8백장이 팔려 히트하리라고 생각했다"는
것(김무령 신씨네기획실장).

한국영화는 첫날 예매때 5백장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보통인데 "편지"의
경우 "은행나무침대"(4천장)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는 설명이다.

서울 강남의 시티극장에서는 개봉 첫 토.일요일에 전회가 매진됐으며
좌석점유율이 가장 낮다는 월요일 첫회에 60%, 이후엔 90%를 넘겼다.

프랑스영화 "뽀네뜨"도 예상을 깨고 히트작 대열에 들어서 주목받고 있다.

네살짜리 소녀가 주연한 작품이어서 기대를 받지 못했으나 개봉(8일)
보름만에 서울에서 7만명을 넘겨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네살짜리가 베니스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는데 호기심을 느껴 찾는
관객이 많다"는 것이 기획자 이선희씨의 얘기.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중에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멜러물이 많다.

위장결혼으로 어린소년의 양부가 된 남자가 귀찮아하던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체코영화 "콜리야"(12월13일 개봉), 우노필름이 준비중인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것.

영화평론가 양윤모씨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가 붐을 이루는 지금의
현상은 "미워도 다시 한번"시리즈가 히트하던 60년대 후반을 연상시킨다"며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멜러물이 인기를 얻는다는 영화학개론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생활속의 슬픔과 고단함을 울어버림으로써 해소한다는 것.

"편지"기획자인 신철씨도 "울고 싶던 차에 꼭 맞는 영화를 보게 돼 실컷
울었다는 관객을 많이 만났다"고 얘기했다.

영화계에서는 또 "누선을 자극하는 멜러물이 여러편 동시에 나오자
"아류"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그것은 억측"이라며 90년대전반의 로맨틱
코미디처럼 90년대후반의 멜러물 붐도 문화.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