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금융대책을 "두더지게임"에 비유하는 시각이 많다.

때려도 때려도 다시 튀어나오는 두더지 잡기 놀이를 말한다.

정부는 지난 25일 은행 종금회의를 긴급 소집, 8개 종금사의 외화부문을
7개 은행이 인수하도록 강제 조치했다.

결과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다음날 고객들은 8개종금사를 찾아가 "내 예금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25일 의결된 예금자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무보증기업어음(CP)에 대한
원리금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종금사에선 예금인출고객의 대열이 해당 금융기관 대문밖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파문이 커져 금융질서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27일오후 무보증CP도
3년간 예금지급을 보장해 준다고 부랴부랴 발표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27일 부총리주재 은행장회의에서 합의된 종금사CP 만기연장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은행들은 대기업 연쇄부도 환율급등등으로 인해 국제결제은행(BIS)비율
8% 유지가 사실상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서 위험자산을 줄일 목적으로 무담보CP 환매 등을 통해 기업대출
회수에 본격 나섰다.

게다가 종금사 부실외화부문이란 덤터기를 안게돼 은행으로선 기업돈줄을
더욱 죄야할 판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무보증 CP의 만기를 무조건 연장해 주라고 지시했다.

만기연장 합의가 지켜질리 무망하지만 이로인해 금융시스템은 더욱 왜곡
되고 있다.

연장해준 CP가 부실화됐을 때의 책임문제에 관해서도 언급이 없다.

이런 문제가 표면으로 불거질 경우 은행장들은 또 회의를 열고 다시 후속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비단 이것들만이 아니다.

정부는 올들어 기아법정관리처리, 주식시장 안정대책,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요청 등에서 늘 시장의 흐름을 뒤좇아 다녔다.

그럴때마다 시장은 정부를 놀리듯 또다른 "두더지"를 만들어 냈다.

단기처방도 필요하지만 불안심리를 덜어줄 종합적인 청사진이 아쉽다.

이성태 < 경제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