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주로 악기로 사용되어 왔지만 옛날에는 시각을 알리고 전장에서
군대의 진격과 퇴각을 지시하거나 장졸의 사기를 북돋우며 임금에게 간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두드리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북은 그 구조가 간단하여 역사가 오래되었고 세계 각처에서 그 발생을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3000년의 고대 오리엔트 조각에는 동물 가죽을 씌운 큰 북이 새겨져
있고 고대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조각에도 장구 탬버린 등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고대 중국에서도 제사나 주술행사에 여러가지 북이 동원되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북이 쓰인 증거가 남겨져 있다.

고구려 안악고분 벽화의 주악도와 행렬도에 북이 그려져 있고 "수서"의
고구려조와 백제조에 북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음악연주때 큰 북이 쓰였다.

고려 때에는 당악과 아악이 들어오면서 여러가지 종류의 북이 궁중음악
연주에 이용되었다.

조선때에는 더욱 많은 종류의 북이 개발되어 궁중음악 연주때 쓰였는가
하면 민간음악에도 주요 악기로 등장하여 후기엔 가장 많이 쓰이는 악기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전통음악 연주에 쓰이는 북만 해도 무려 20여가지나 된다.

엊그제 안양시청 현관에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인 "안양시민의 소리 북"이
선을 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통 길이가 2.2m, 울림판 지름이 2.4m, 통 둘레가 8.2m나 되는 이 북은
내년 6월 청사앞 잔디광장에 4각정자를 지어 영구보존된다는 것이다.

"장엄한 북소리처럼 시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라는 뜻으로 이 북을
만들었다"는 제작자의 말대로라면 이 초대형 북은 현대판 신문고가 되어야
마땅하다.

신문고는 조선조 태종 1년(1401)부터 궁궐에 설치되어 민원을 상달하는
매개체로 이용된 북이다.

그때 그것은 신분에 구애됨이 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서울에 거주하는 관리와 양반이 주이용층이었다.

"안양시민의 소리 북"이 공복들의 대민봉사자세를 가다듬어주는 상징물이
되길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