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 < 대검찰청 사무국 >

최근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IMF의 개발금융을 지원받은 국가중 한국만큼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는
일찍이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IMF의 우등생 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1년전 선진국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 확정되면서 나라는
축제분위기에 휩싸였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던 경제가 침몰위기를 맞으며
급전을 구하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그동안 각 경제주체들은 거품경제 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어 안일하고
방만한 행동패턴을 보여옴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경제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가계의 적자가 늘어나는 추세인데도 불구하고 일부 국민은 해외여행과
수입사치품을 선호해 왔으며,대기업들도 덩달아 수출보다는 외제품수입에
열을 올려 왔다.

정부는 정부대로 예산낭비와 선심행정을 일삼아 오면서 경제의 경쟁력
추락조짐을 진솔하게 국민들에게 인식시키지 못했다.

정치권도 정치싸움에 휩쓸려 국가이익이고 경제고 뭐고 돌볼 겨를이
없었다.

꼭 해야 할 개혁조치를 놓고는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려 개혁논리는
사회논리, 정치논리에 짓밟혀 왔다.

노동법파동이 그랬고 금융개혁법 파동도 그런 경우이다.

정부는 그동안 안일한 경제대응 때문에 우리 경제의 국제신인도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반성하고 그때 그때 기동성있고
시의적절한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작은 것들이 모이면 큰것이 이루어진다.

외환위기만해도 그렇다.

1달러, 10달러가 쌓여 우리를 외채대국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해외여행경비는 70억달러를 넘었고, 올해는
80억달러를 웃돌것으로 예상된다.

백화점에는 국산화장품 코너가 없어진지 오래이다.

미국이 한국자동차시장을 상대로 슈퍼301조를 발동했어도 미국차를 사는
사람들은 줄지 않고 있다.

뿐만아니라 청소년들까지도 외제병은 중증이다.

외제청바지라면 쓰레기라도 마다않고 배낭까지 미제 일색이다.

특히 불황속에서 빚어지고 있는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현상은 심각한
상태이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날에도 서울 강남의 호화술집은 빈자리가 없고
수십만원 또는 수백만원하는 최고급 양주는 없어 못판다는 것이 TV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얼마전에는 미국 도박장에서 수십만 수백만달러를 날린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외환위기로 나라가 흔들릴 때 달러사재기를 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이제 우리 모두는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국가를 튼튼하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동참의지와 역할 분담이 시급하다.

국민들도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소비절약 등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위기극복과정에서 국민이 떠맡게 될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실업과 임금감소를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감내하고 위기극복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

이젠 호화로운 해외여행이나 사치 낭비는 삼가야 한다.

1달러바꾸기같은 작은 일에서부터 역할을 찾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거시지표로 볼때 우리에게는 아직 잠재력이 있다.

IMF구제금융의 긍정적인 측면을 최대한 살려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IMF가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조건들이 아무리 힘든 것이라해도
한국경제를 재건, 건전한 국가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모두가 발벗고
일어서야 한다.

가계와 개인들도 고통스럽지만 긴축과 내핍의 행렬에 동참해야 한다.

벼랑끝에 몰린 우리경제를 살리기위해서는 지도층에서 기업인 근로자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소비재 수입품을 안쓰는 것은 달러위기를 극복해
내는 밑거름이다.

범국민적인 공조체제 분위기의 확산이 선행되어야 하며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국민들의 각성과 의지가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