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도 지난 80년대말에서 90년대초에
걸쳐 엄청난 금융위기를 겪어야 했다.

당시 미국내 여수신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저축대부조합(S&L)의
부실화가 주범.

미 연방정부는 이 S&L의 부실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조세수입의 0.7%정도인
7백38억달러의 재정자금을 포함, 모두 1천51억달러를 쏟아부어 겨우 불을 끌
수 있었다.

국민의 혈세를 투입한 점은 역시 재정자금으로 부실금융을 처리하려는
한국이나 일본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S&L 경영진 1천여명에게 형사책임을 물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으로 지적된다.

S&L이 사회문제화된 것은 80년대 후반.

3천여개에 달하는 S&L중 7백여개사가 사실상 도산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S&L은 원래 조합원들의 저축을 자금원으로 이용, 이를 조합원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주택구입 자금이나 개량비용으로 빌려주는 일종의 협동저축기관이었
으나 금융산업 규제완화와 더불어 취급업무가 일반은행과 유사하게 됐다.

S&L이 부실화의 길을 걷게된 최대 원인은 주택저당 대출에서 벗어나
리스크가 높은 정크본드에 대규모로 투자했기 때문.

수익성이 높은 반면 투자위험 또한 그만큼 높은 정크본드가 발행기업의
부도로 속속 휴지조각이 되니 S&L도 부실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금리자유화에 따른 경쟁격화도 부실화를 가속화시켰다.

이처럼 S&L이 부도위기에 몰리자 미 정부는 재정자금 투입을 결정한다.

이를위해 금융기관 개혁재건집행법에 근거, 한시적인 정부기구로 89년
정리신탁공사(RTC)가 설치됐다.

이 RTC는 S&L의 파산관리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 S&L의 자산과 부채를
인수하고 가능한한 조기에 S&L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한편 S&L에 들어
있던 예금을 대신 지불해주거나 다른 건전한 S&L에 양도하는 예금자 보호
조치도 취했다.

미 정부가 재정자금을 투입한 것은 RTC가 인수한 부실 S&L의 자산을 매각
하고서도 S&L이 지고 있던 채무를 다 갚지 못할 경우였다.

이렇게 정부가 직접 메워준 돈은 7백38억달러.

이외에 S&L의 자금조달을 위해 설립했던 정리자금조달공사(REFCORP)가
채권발행을 통해 3백1억달러, 유동성 공급기관으로 설립됐던 연방주택대부
은행(FHLB)이 12억달러를 보탰다.

이에따라 95년 RTC가 해산될 때까지 S&L 처리에 투입됐던 자금은 모두
1천51억원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처리된 S&L은 모두 7백47개.

전체 S&L의 4분의 1 가량이 문을 닫은 셈이다.

미국정부가 이처럼 막대한 세금을 부실금융기관 처리에 투입하고서도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부실 S&L의 경영진에게
철저히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당시 부실경영 책임을 지고 주주에대한 배임죄로 실형판결을 받은 경영자는
1천여명에 달했다.

이같은 재정지출로 당시 부시 행정부는 재정적자가 대폭 확대돼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며 클린턴에게 정권을 내줘야 했다.

그렇지만 그때 고통을 참고 이겨낸 것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사상
유례없이 긴 호황의 한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강현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