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 내키지않는 일이기는 하나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프리미엄을 주는데 익숙하다.

재불작가나 혹은 재미작가 등의 호칭이 단순히 그 작가의 활동지역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국제적인 미술무대에서 주변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그 중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역량과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 체류하는 우리 작가들이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외교와 무역, 교육 등의 현실적 성과와 노고가 상당하다.

특히 요즘같이 외화가 부족하여 국가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의
활약은 더욱 빛을 발한다.

우리 작가들이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는 크게 네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유학을 가서 정착을 하는 경우 둘째는 이민2세로 성장한 경우
세째는 초청을 받아 계기가 된 경우 네째는 자유로운 환경을 찾아서, 혹은
도전이나 자극을 원하여 체류하는 경우다.

어떤 경우든 재능있는 많은 작가들이 영구적이든 혹은 한시적이든
체류하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애국이다.

축구나 야구등의 스포츠 영웅들이 국위를 선양하는 것만큼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을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은 그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겪는 고충도 적지는 않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인종적 차별이나 편견을 딛고 그 나라
영역의 정상에 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상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의 기량이나 재능이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그렇게 쉽지 않다.

얼마 전 정명훈씨가 부당하게 해임된 사건이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기는 환경과 전통, 교육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납득이
가는 일이다.

물론 간혹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 기저에는 엑소틱한 것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기가 쉽다.

아닌게 아니라 입장을 바꿔 생각했을 때 스포츠나 보통의 무역 상품이라면
모를까 문화예술의 안방을 그리 쉽게 내주겠는가.

더군다나 우리보다 좀 못한다 싶은 나라 출신이라면 말이다.

두뇌가 우수한 과학자가 인정받기가 쉬우나 예술가가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는 국력이 뒷받침되고 나아가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체계가 있어야
한다.

무역 외교 등의 거시적 차원에서 협력이 수반되고 아울러 효과적인 기획과
언론 홍보, 마케팅 전략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미 문화예술이 국제경쟁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았을 때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해외에 체류하는 작가들의 현지 시장진출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국내시장에의 폐단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해외에서의 활동상이 과대 포장되어 국내시장으로 역수입되는 사례들이
그것이다.

해외 체류지에서의 시장 점유보다는 고국의 시장이 손쉬운 까닭에, 그리고
성원과 보답의 차원이 아닌, 심리적 프리미엄을 이용하여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어떤 작가들은 거의 국내에 상주하면서도 재외작가로 처세하는 경우도
있다.

해외에서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국내 애호가들의 선의를 악용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선화랑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