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중은행의 증자와 부실채권 정리에 소요되는 자금조달을 위해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하는 장기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불안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데서 출발한다.

단편적인 처방으로는 금융시장의 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점을
감안,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으로 어차피 금융실명제를 보완해야 한다면 차제에
이를 금융시장 안정과 연계시켜 보겠다는 의도다.

실명제 퇴색이라는 비난이 생기더라도 한국경제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금융불안을 불식하기 위한 조치라면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재경원은 장기채 발행과 함께 일부은행에 대한 현물출자, 후순위채 매각,
자산재평가, 장기외화자산 인수 등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 부실기관 지원책 마련의 배경 =IMF는 부실금융기관의 퇴출없이 금융산업
의 구조조정도 이뤄질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생사의 기준은 자기자본비율.이미 영업정지를 당한 9개 종금사에 이어
나머지 21개 종금사도 98년 3월말까지 단계적으로 결정된 자기자본비율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정상업무가 중단된다.

은행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IMF는 국내 2개은행에 대해 2개월 안에 경영개선계획서를 받고 4개월안에
회생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는 폐쇄조치토록 했다.

2개월안에 다른 은행과의 합병이나 영업의 일부양도를 포함한 획기적인
개선안을 제시하라는 요구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은행에선 예금인출 소동이 빚어지고 있다.

다른 은행들도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자기자본비율(8%)를 맞추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자기자본을 높이지 않으면 정리대상 은행의 대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 장기채권 발행 =재경원은 은행및 종금사의 자기자본비율을 내년까지
8%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실채권정리기금(성업공사)이나 통합예금보현공사
가 장기채권을 발행토록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한 별도의 법률을 만들기로 했으며 이미 정치권에도 협조요청이 돼
있다.

정부는 이 채권을 한국은행에 인수시키거나 해당은행에 직접 증자납입대금
으로 쓰도록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인수기관은 이를 팔아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정부는 이 채권을 외국 금융기관에도 매각할 방침이다.

결국 이 채권은 개인투자가들에게 매각되는 데 개인들이 살 경우엔 자금
출처를 묻지 않도록 한다는 게 재경원의 방침이다.

<> 기타 부실은행 지원방안 =우선 서울은행에는 제일은행에 출자했던
방식과 같이 정부보유주식을 곧바로 출자할 계획이다.

규모는 8천억원으로 잡고 있다.

다만 정부의 증자 참여가 은행에 대한 엄청난 특혜인 만큼 정부에게 주식을
넘기는 은행의 경우 임직원및 점포축소, 부동산 매각 등 강도높은 자구노력
이행을 요구할 계획이다.

은행들이 발행하는 후순위채를 대형보험사및 외국 우량금융기관이 인수
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이미 재경원은 보험사에 대한 후순위채 투자 금지령을 폐지했다.

자산재평가를 통해 장부자산을 현실화하는 방안도 유력하다.

이와함께 IMF의 유동성 지원을 계기로 부실채권정리전담기금 등을 통해
은행및 종금사의 장기외화자산을 인수하고 단기외화부채를 대신 갚아주는
방법도 고려중이다.

재경원은 이같은 작업이 제대로 추진되지않을 경우 일부 부실은행을 합작
은행으로 전환시키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외국 금융기관및 자금여력이 있는 대기업을 끌어들여 최악의 상황을
막겠다는 복안이다.

국책은행이 부실은행을 합병할 경우엔 업무영역을 확대해 조고 결손자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최승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