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금융공황이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9개 종금사들에 대한 전격적인 업무정지명령에 이어 지난 5일에는 약정고
기준으로 국내 증권업계 8위인 고려증권이 최종 부도처리됐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상상도 할수 없었던 금융기관들의 무더기 파산이
현실로 닥쳤지만 지금 우리처지는 놀라고만 있을 정도로 한가롭지 못하다.

신속하고 과감한 후속조치로 그나마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만일 후유증이 커져 자칫 금융기관및 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질 경우
금융-외환 위기가 재연돼 IMF의 지원아래 우리경제의 구조조정을 꾀하는
노력이 실패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은 실정이다.

이미 재계 12위인 한라그룹이 지난 5일 최종 부도처리됐고 상장회사인
영진약품은 화의신청을 함으로써 이같은 가능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만일 정부발표대로 내년 6월까지 금융기관정리를 미룬다면 쓰러질
기업들은 훨씬 늘어날수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반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부실
금융기관 정리에 대한 처리방침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금처럼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는 상황에서는 당국의 애매한
태도가 일반국민의 막연한 불안심리를 부채질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
쉽다는 점을 강조한바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근거없는 헛소문을 유포하는 행위를 반국가적인 범죄로
규정해 엄벌에 처하겠다며 으름장만 놓고 있다.

의심암귀라는 옛말대로 헛소문을 잠재우는 데는 진상공개가 지름길이지
단속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금융당국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IMF와 부실은행의
처리에 대해 합의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으며, 결국 IMF가 합의문를
공개함으로써 이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자 정부의 신뢰성은 다시 한번
추락했다.

다음으로 시급한 것은 부실금융기관의 정리를 가능한한 앞당기는 일이다.

그래야 성한 금융기관이나마 살수 있지 지금처럼 은행에 콜자금공급을
강요하며 시간을 끌다가는 자칫 물귀신처럼 금융권전체가 빚더미에 파묻힐
가능성마저 있다.

현재 9개 종금사에 묶여 있는 콜자금만 1조4천억원 가량으로 금융기관간
자금거래가 마비돼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고려증권과의 형평을 맞추기 위해서도 이미 업무정지명령을 받은
9개 종금사의 예금지급및 채권 채무인수를 단행하고 자금부족규모가 큰 다른
종금사들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아울러 비록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더라도 예금지급동결은 하지 않겠다고
보장함으로써 예금인출소동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차별적인 예금인출및 대출회수로 자구노력은 커녕 오히려
파국을 앞당기게 된다.

집안살림이 어려워지면 가족들이 각자가 제살길을 찾아야 하듯이
국가경제도 마찬가지 이치다.

지금이라도 금융당국은 현실을 직시하고 최악의 파국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