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으로 그들은 회장님의 벤츠 600을 타고 새로 개발된 가까운
온천호텔로 나들이를 떠났다.

"나의 히어로를 위해 건배!"

그녀는 최고급 포도주를 김치수가 주는대로 받아마시고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그의 목을 껴안고 어쩔 줄을 모른다.

김치수도 의외의 횡재를 했을때 처럼 붕붕 떠서 제 정신이 아니다.

오래전 살롱에 나가던 여대생 김수란과 헤어진 이후 거의 7년만의
애인이다.

수란이는 늘 이유가 많았고 자기 몸을 다이아몬드처럼 아끼면서 도무지
진실이 없었다.

수란이는 애인이 있었는데 그걸 숨기다가 수행비서였던 강덕수에게
발각당하고부터 김치수의 외도는 깨끗이 중단되었었다.

수란이는 아름다운 아가씨요, 여대생답게 말도 잘 하고 좋은
골프친구였는데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그날로 모든 관계를
종식시켰다.

얼음처럼 차고 매몰찬 선언을 했다.

그때는 아직 60고개를 넘어선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애인을 숨겨 놓고 내가 사준 아파트에서 만나온 이상 나는 더 이상
너에게 한 푼도 줄 수 없으니 그 아파트 하나 갖고 떠나라"

이것이 마지막 애인 수란이와의 끝마무리였고 그 이후에는 결코 어린
여자아이들을 사귀지 않았다.

그는 어린 연인들에게는 아주 인심이 후한 회장님이었다.

자선사업과 장학사업에 아낌없는 후원을 하듯이 불우한 젊은 애인들에게는
자기가 쓰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아낌없이 썼다.

환갑이 지난 후에 생긴 습관이었다.

그 전에는 장학기금 이외에는 거의 허실하는 일이 없도록 지출에
인색했었다.

그는 지금 어떻게 하면 자기도 즐겁게 지내고 미화에게도 행복한 인생을
새로이 열어줄까 그것만을 궁리한다.

"대학에 다니는 것은 그렇게 결정되었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게 무엇이냐.
그걸 말해봐라"

그는 수란이보다 아름답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어도 순금같은 진실을 가지고
덤벼드는 그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

"그 다음은요, 회장님이 시키는대로 볼링과 골프, 또 수영. 회장님은
수영도 아주 잘 하신다면서요? 시인 아줌마가 그랬어요"

"하하하하, 너 오늘 나하고 온천온 것 발설하지 말아라. 절대로"

생전 처음 온천이라는 데에 온 미화는 뜨거운 물이 지구속에서 솟구쳐
올라온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소리를 지르며 욕조속으로 옷을 벗고 들어간다.

이렇게 매끄러운 물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다.

매끌매끌한게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부드럽고 청결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