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자동차 매각] 55년 '하동환자동차' 효시..어떤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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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의 역사는 1955년 설립된 버스 제조업체인 "하동환자동차"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65년 서울시 좌석버스 운행 계획과 함께 국내 최대규모의 버스
제조업체로 부상한 이 회사는 67년 8월에 월남과 브루네이에 30대의
버스를 수출해 국내 자동차 수출 1호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동환자동차는 72년 동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꿔 컨테이너 트럭, 트레일러등
특장차 분야에 주력하다가 84년 12월 지프 전문회사인 신진지프의 후신인
거화를 흡수합병한다.
이후 동아자동차는 86년 11월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의 강력한 자동차
산업 참여의지에 따라 쌍용그룹에 인수된뒤 88년3월 쌍용자동차로 상호가
변경돼 지금에 이르렀다.
이렇게 보면 쌍용자동차에는 하동환자동차, 신진지프, 거화, 동아자동차등
과거 국내 유력의 4개 자동차회사의 역사가 녹아있는 셈이다.
쌍용은 동아자동차 인수직후 시판한 코란도 패밀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4륜구동및 승합차 생산 전문메이커로 성장하게 된다.
88년 동아자동차 인수당시 1만대 불과하던 코란도등 4륜 구동 생산라인을
10만대로 늘렸으며 미니버스와 상용차 라인도 7만대 수준으로 증설했다.
이와함께 독일 벤츠와의 기술제휴및 자본합작, 영국의 스포츠카
전문메이커인 "팬더"인수등 해외 합작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또 최근에는 4천5백억원을 들여 5만대 규모로 국내 최고급 승용차인
"체어맨"생산라인을 갖추는등 자동차 종합메이커를 향해 꾸준히 사세를
확장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몸집 키우기"가 결국은 쌍용의 발목을 죄는 족쇄로
작용하고 말았다.
자동차 분야에서만 총 3조4천억원의 빚과 5천억여원의 누적적자가 발생,
그룹전체의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고 결국은 대우에 회사를 넘겨주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65년 서울시 좌석버스 운행 계획과 함께 국내 최대규모의 버스
제조업체로 부상한 이 회사는 67년 8월에 월남과 브루네이에 30대의
버스를 수출해 국내 자동차 수출 1호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동환자동차는 72년 동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꿔 컨테이너 트럭, 트레일러등
특장차 분야에 주력하다가 84년 12월 지프 전문회사인 신진지프의 후신인
거화를 흡수합병한다.
이후 동아자동차는 86년 11월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의 강력한 자동차
산업 참여의지에 따라 쌍용그룹에 인수된뒤 88년3월 쌍용자동차로 상호가
변경돼 지금에 이르렀다.
이렇게 보면 쌍용자동차에는 하동환자동차, 신진지프, 거화, 동아자동차등
과거 국내 유력의 4개 자동차회사의 역사가 녹아있는 셈이다.
쌍용은 동아자동차 인수직후 시판한 코란도 패밀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4륜구동및 승합차 생산 전문메이커로 성장하게 된다.
88년 동아자동차 인수당시 1만대 불과하던 코란도등 4륜 구동 생산라인을
10만대로 늘렸으며 미니버스와 상용차 라인도 7만대 수준으로 증설했다.
이와함께 독일 벤츠와의 기술제휴및 자본합작, 영국의 스포츠카
전문메이커인 "팬더"인수등 해외 합작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또 최근에는 4천5백억원을 들여 5만대 규모로 국내 최고급 승용차인
"체어맨"생산라인을 갖추는등 자동차 종합메이커를 향해 꾸준히 사세를
확장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몸집 키우기"가 결국은 쌍용의 발목을 죄는 족쇄로
작용하고 말았다.
자동차 분야에서만 총 3조4천억원의 빚과 5천억여원의 누적적자가 발생,
그룹전체의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고 결국은 대우에 회사를 넘겨주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