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완표 <인제대 교수 / 경제학>

한국정부와 IMF는 3일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와 미국
일본 등 주변국의 협조융자를 포함하여 총5백60억달러의 긴급자금지원에
합의함으로써 한국정부는 앞으로 3년간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IMF시대에
진입했다.

IMF가 한국에 대해서 자금지원조건으로 제시한 정책처방주문은 크게
네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긴축 거시경제정책시행, 둘째 과감하고도 신속한 부실금융기관 정리,
셋째 과감한 한국의 산업구조 개혁, 넷째 금융시장의 과감하고도 신속한
개방 등이다.

IMF 정책처방에 따라 한국경제는 98년 경제성장률이 3%이하로 떨어질
것이고, 이로 인해 내년의 실업률은 올해의 2% 수준에서 크게 높아진 5~6%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근거해서 실업자 수는 최소 1백만명에서 1백70만명, 혹은 그
이상까지도 발생할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한국경제의 내수시장은 침체를 넘어 붕괴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대다수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는
연쇄부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한국경제는 실물부문과 금융부문 구별없이 모두
붕괴하여 끝없는 경기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내수시장의 어려움은 결국 기업들로 하여금 수출에 사활을 걸수
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외환위기가 가져온 원화약세는 기업들로 하여금 수출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더욱 재촉,고무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의 탈출구 역시 낙관할수 없다.

현재 한국과 마찬가지로 금융위기에 빠져있는 일본 중국 역시 수출이
심한 압박을 받게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과 중국은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국화폐의 평가절하를
유도할 것이고 이는 또다시 한국의 수출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될 한국 일본 중국간의 수출시장 쟁탈전과
환율전쟁은 역시 금융위기에 직면한 동남아 국가들을 더욱 궁지로 내몰
것이며, 아시아의 금융시장을 미증유의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반면 아시아 제국의 수출을 수용할수 있는 곳은 미국과 유럽제국
뿐이지만, 이들 시장 역시 급격히 증가하는 아시아 제국의 수출을 모두
흡수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상 아시아 제국의 수출전쟁은 치열함을 넘어서 사활을건 사투로
발전하는 것이다.

결국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에 가해지는 IMF의 정책수용 요구는 이들
국가를 금융위기에서 구제하기보다는 국내기업의 대량 도산, 대규모 실업,
계속되는 외환위기로 인하여 이들 국가들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IMF의 정책처방은 "국제금융시스템의 희생자들을 벌주는"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IMF의 구제책은 이들 국가에 가혹한 형벌을 주기보다는 세계경제구조의
모순, 즉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국제 투기자본에 대한 적절한 대응,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균등한 무역질서의 교정노력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국내 경기침체를 수출로 타개해보려는 일본의 과감한 경제정책방향의
변경 없이는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간에 누적되어온 엄청난 규모의 대일
무역수지적자로 인한 외채문제는 단기간 내에 해소될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아시아 제국의 금융위기는 국내 금융시장및 산업구조에 문제가
불거진 몇 나라에 호된 질책을 가함으로써 해결될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전세계적 수준의 합리적 경제질서를 서둘러 확립하고 이를 전체적으로
조율해갈수 있는 세계적 차원의 리더십이 확립될 때 가능한 것이다.

금융위기를 초래하게된 가장 큰 책임은 당사국에 돌려질수 밖에 없으며,
이 문제의 가장 손쉬운 해결책 역시 당사국의 잘못된 경제구조나 경제정책의
수정을 통해서 찾아질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시각에서 IMF의 경제정책요구는 우리가 감내하지 않을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최근 아시아 제국의 금융위기 원인과
대책을 외환위기에 빠져 있는 국가들의 열등한 경제제도나 비효율적인
경제정책, 무책임한 당사국의 정치가에게 모두 전가시키고 고통을 이들
해당 국가에만 강요하는것 역시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현실은 불과 몇 달 앞도 자신있게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급박한 것이다.

이것이 금융기관을 부실로 만든 금융기관 경영자, 이를 감독하고 감시하지
못한 금융정책당국, 무원칙한 투자에 방만한 경영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초래한 대기업의 경영자,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정치가들의 이전투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이제부터
극복해야할 어려운 난제들의 극복책이 이들에 대한 책임추궁과 비난보다
더 시급하고 절박한 것이다.

이제 정말 우리에게 지혜와 용기만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