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울이 좋다"를 자신있게 외치는 건강한 회원들이 가득한 "거래소
스키부"의 나이는 이제 세살.

거래소내의 많은 동아리모임중에선 걸음마를 막 뗀 신생모임인 셈이지만
스키부 회원들의 열정만큼은 슬로프를 통째로 녹여버릴 듯 뜨겁기만 하다.

소풍날 기다리는 초등학생마냥 입동도 되기 전부터 스키시즌을 기다린다는
서정욱 과장(총무부)을 비롯 왕초보에서 일명 패러렐정(패러렐 턴의 달인
이라는 뜻)으로까지 일취월장한 정창석 대리(증권시장부), 초보시절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는 코스에 무리하게 도전하다가 OB(슬로프 이탈)가 나서
불귀의 객이 될뻔 했음에도 불구, 여전히 스키시즌이면 누구보다 먼저
슬로프를 찾는 조영철 대리(상장공시2부), 그리고 "설원을 정복하고 싶다"며
슬로프를 종횡무진, 하얀 눈의 요정같은 황우경 사원(기획부)에 이르기까지
전 회원들의 극성에 가까운 스키에의 애정이 "거래소 스키부"를 50여명의
회원이 포진한 거래소 최대 규모의 동아리로 키웠다.

우리 스키부의 자랑이라면 무엇보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우애의 장이라는
점이다.

가정이 있는 회원들에게는 바쁜 업무로 한끼 식사조차 함께 하기 어려웠던
가족들과의 단란한 주말 한때가 된다.

미혼인 회원들에게는 직장 선후배간의 업무를 떠난 진정한 대화의 시간
으로서 한몫을 한다.

넘어진 상사에게 부하가 손을 내밀고, 초보인 아빠에게 아들이 스키타는
법을 가르치는 사이 세대간 계층간의 벽도 말끔히 허물어진다.

필자 역시 매년 스키부의 정기활강모임에 아들과 함께 참가하면서 부족
했던 대화도 나누고, 또 폴대를 쥐어주며 스키의 기본을 가르쳐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부쩍 성장한 아들녀석이 이제는 아빠의 스키 플레이트
를 대신 짊어지는 대견한 모습도 보면서 부자의 정을 돈독히 해가고 있다.

더불어 스키장에서는 지위고하도 남녀노소도 없으니, 필자와 같은 임원이나
상사가 정신없이 눈밭에 미끄러지고 구르는 모습은 아마도 부하직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도 큰 기여(?)를 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비교적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작금의 경제위기는 우리의 체감온도를 영하로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때 스키를 즐기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우려도 높지만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눈 덮인 산 정상에 서서 살갗에 파고드는 찬바람을 이기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보는 호연지기를 길러봄도 나쁘지 않으리라.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