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포럼(회장 김경원)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가 심화되자 12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 카밀리아룸에서 남덕우
이홍구 두 전총리를 초청, 경제위기 현황과 대책에 관한 설명회 및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남덕우 전총리가 주로 현황을 설명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이홍구 전총리가 추가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경원회장은 "지난 11월18일 본 포럼이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남덕우
전총리가 "하루속히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면서 "지원 요청이 현실화됐지만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어 보다 정확한 현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겠다고 판단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두 전총리의 발언내용을 항목별로 요약한다.

<>남덕우 전총리<>

<> 종금사 영업정지와 예금자 보호 =며칠전 5개 종금사에 추가로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종금사들은 당시 예금인출사태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 위기이다.

국민이 정부의 말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도 예금자들은 돈을 찾겠다고 아우성이다.

대통령이 예금을 보호해주겠다고 말한 이상 하루라도 빨리 한국은행
특별융자를 동원해서라도 무조건 예금자들에게 돈을 내줘야 한다.

그 돈이 어디 가겠는가.

결국 금융기관에 돌아온다.

정부는 통화팽창을 우려하지만 한국은행이 통화를 환수하면 된다.

금융기관에 대한 믿음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

<> 환율 폭등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은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도 한국 정부가 IMF와 약속한 구조조정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받고 있다.

더구나 정치권에서 재협상을 운운하고 있다.

IMF가 돈을 한꺼번에 주지 않고 사태를 봐가며 조금씩 주겠다는 것은
이런 일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원화 환율 급등은 순전히 투기현상이다.

이 기세를 꺾으려면 IMF가 자금을 대대적으로 투입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 기업들도 수십억달러를 갖고 있으면서도 내다팔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환율이 더이상 오르지 않고 내림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싶으면 다들 다시 달러를 내다팔 것이다.

결국 IMF의 적극적 참여에 의한 과감한 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인 셈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IMF도 어렵게 되고 국제통화질서도 크게 흔들리게 된다.

<> 기업 연쇄부도 =종금사에 대해 추가로 영업정지조치를 내린 것은 잘한
일이다.

어차피 문닫을 곳이라면 은행이 밑빠진 독에 물붓듯 계속 돈을 줘서는
안된다.

지금 은행의 신탁계정을 통해 종금사에서 사들인 어음이 40조원가량
된다는데 어차피 못받는 것이라면 일률적으로 연기하는 편이 낫다.

지금 은행에 가봐야 신용장 개설 협상도 되지 않고 외상수출도 안되니까
수출업자마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수출이 안된다면 무슨 수로 국제수지를 개선할 수 있겠는가.

은행 신탁계정은 기업에 단기간이라도 유예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기업구제책으로는 정부가 세계은행에 구조조정 자금을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세계은행은 멕시코에도 구조조정자금을 제공한 바 있다.

1백억달러 가량 지원받는다면 성업공사에 맡겨 자금경색으로 위기에 빠진
기업에 장기저리로 융자해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기업에 이 돈을 빌려줄 때는 은행의 단기채무를 갚는데 쓴다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

즉 기업의 단기채무를 장기채무로 바꿔준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어음이 돌아올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고 은행은
위험채권이 줄어 지금처럼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려고
채권을 마구 회수할 필요가 없어져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

기업은 이 돈을 조금씩 상환하면 된다.

물론 환차손은 물어야 한다.

그러나 장기융자인데다 금리가 싸니까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이다.

<> 국제사회 신뢰회복 =현재로서는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국제사회는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선진국이 우리를 때려잡으려 한다고 떠들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우리를 욕하는 나라에 왜 돈을 빌려줘야 하느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조목조목 설명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과 금융기관의 유착고리를 끊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 은행법 몇 조를 고치겠다 등의 계획표를 만들어 제시하라는
얘기다.

이런 문제를 국회에서 처리하다 보면 한달이 걸릴지 두달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개별법 개정안을 총망라한 "구조조정특별조치법"이라는 단일법안을
만들어 국회에서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

<> 실명제 유보 =실명제를 유보하자는 주장은 비과학적이다.

지하자금이 30조원이라는데 도대체 이자를 포기하고 돈을 사과궤짝에 넣어
숨겨둔 사람이 얼마나 돼겠는가.

이 돈은 이미 금융기관에 들어가 있다.

다만 정치권과 기업의 유착, 정치권의 부패 등을 해결하지 않고 실명제를
실시하다보니 마치 실명제가 사정의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비치는 것이 문제다.

이는 정치가 깨끗해지면 저절로 해결된다.

예금자의 비밀보호를 확실히 함으로써 정직한 사람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실명제를 공고히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홍구 전총리<>

현재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이제 국경이 무너지고 세계 금융시장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국내와 국외의 신뢰위기는 따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국민감정이나 애국심에 호소하고 우방이라고 해서 우정에 호소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만의 노력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IMF가 확고한 입장으로 참여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IMF와의 협조관계를 공고히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선거는 우리 내부의 행사이다.

후보들이 선거에서 이기려고 국민들을 향해 갖가지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말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의 입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이라도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거둬들이고 IMF에 믿어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오는 14일 TV토론에서는 협약을 1백% 지키겠다고 국민과 국제사회에
약속해야 한다.

우리가 어려울 때 호소하던 민족감정도 이번에는 위험할 수 있다.

불필요한 문제를 덧붙여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어선 안된다.

영국도 지난 76년 IMF에 갔지만 영국사람들은 이를 대영제국의 치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정리=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