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이 비판일색에서 동정론으로 다시
급선회하고 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도대체 믿을 수 없다"며 총체적 불신을
보이던 외국 언론의 시각이 최근 한국의 3당 대선 후보들이 IMF의 금융지원
합의이행을 약속한 후에는 "외국의 투자가들과 은행신인도를 높여주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또 일부 언론은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이 IMF구제금융과 관련, 양국
정상은 IMF합의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후 한국경제의
신뢰회복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외국 언론의 시각이 이처럼 우호적인 입장으로 바뀐 것은 무엇보다 3당
후보의 합의이행 약속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한국경제의 대외
신인도 향상에 크게 도움된다고 자체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해외의 논조가 이처럼 급박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해보면 위기극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되찾는 길 뿐임을 알 수 있다.

<> 금융위기 초기단계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화차입난이 현재화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초.

이때만해도 한국은 상당히 신뢰할 만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서 국내 금융기관들의 차입조건이 Libo(런던은행간
금리)+1%포인트까지 치솟는 등 신용도가 급락하고 있었다.

기아사태의 장기화로 부실채권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게 주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유력금융기관인 SBC워버그은행의 드 기어 회장은
9월18일 런던주재 한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앞으로 한국의 금융기관과 기업
들이 해외에서 자본을 조달할 때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화의 평가절하는 우려할만한 정도는 아니며 한국의 경제체질은
동남아에 비해 대단히 건전하다"고 평가했다.

마침 이날 나온 IMF의 "97~98년 세계경제전망"도 한국경제가 97년 6.0%
성장에 이어 내년에도 6.0%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 금융위기 심화단계 =지루하게 계속되던 기아문제가 법정관리로 결론이
난 10월 하순을 전후해 외국 금융기관이나 신용평가기관에서 "한국의 상황이
동남아보다 나을게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서는 한국의 외환보유고에 대한 단기외채 비율이
동남아국가보다도 오히려 높은 상태라는 보고서까지 내놓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와 무디스도 이 무렵 한국과
한국계 은행들의 신용도를 일제히 하향조정했다.

이에따라 시중은행은 물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등도 단기외채의 차환에
차질을 빚는 등 본격적인 금융위기단계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11월 중순에는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국제경제연구소(IIE)소장이
"한국이 금융위기를 수습하려면 5백억달러의 IMF자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 그동안 막연히 거론되던 IMF 구제금융 요청론이 수면위로 떠오르기에
이르렀다.

<> IMF협상단계 =11월23일 한국과 IMF간의 협상이 시작되자 외국언론들은
이를 "아시아 경제우등생의 좌절", "한강 기적의 마감" 등으로 표현하며 그
불똥이 미국 일본 유럽 등지로 튈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단기간에 경제현대화를 이룬 한국의 자존심에 치욕적인
조치"라고 전했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한국기업들이 해외차입을 통해 무리
하게 설비투자를 감행한게 화근이었다고 분석했다.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지원대상국에 초긴축을 요구하는 IMF식
처방에 대한 비판론도 대두됐다.

제프리삭스 미 하버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IMF의 처방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온 남미국가에나 맞는 처방"이라며 "대부분 건전
재정을 유지하고 있는 동아시아에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협상타결직후 =12월4일 IMF와의 협상이 타결되자 외국에서는 "한국이
채무불이행이라는 최악의 위기는 넘기게 됐다"는 안도감을 표시하면서
한국은 이를 경제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로버트 루빈 미재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한국을 도와 빨리 시장안정을
회복하는게 미국의 경제안보에 중요하다"고 밝혔고 아사히신문은 "IMF의
조건은 매우 가혹하지만 한국경제가 재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협상타결 직후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이 즉각 12억5천만달러의
협조융자계획을 발표하는 등 서방 각국은 대부분 IMF의 대한국 지원프로그램
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최근의 상황 =지난 13일 3당 대선 후보들이 IMF의 금융지원 합의이행을
약속한 후 언론들의 보도내용이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지는 14일 대선후보들의 이행약속 관련 "이는 외국 투자가들과
은행의 신인도를 높여주는데 다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영삼 대통령이 대선 후보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것은 국가파산
위기 가능성을 막기위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IMF와의 합의사항을 준수함으로써
국가 신인도를 제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도 이날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최근 IMF의
구제금융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백악관 한 관리의 말을 인용, "두나라 정상이 IMF합의를 준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면서 "두 정상은 또 한국
경제의 신뢰회복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13일자에서도 "한국이 병든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한국은행이 전날 거의 마비된 금융시장을 회복시키기 위해 국내
금융기관에 65억달러를 긴급 지원하고 외환시장에 개입, 치솟는 환율의
진정에 나섰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처럼 다소 "누그러진" 보도내용은 불과 며칠전까지 쏟아내던 혹독한
비판기사와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IMF협상타결 이후에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더욱
추락하는 모습이었다.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단기외채상환능력이 의문시되는데다 한국 정부의
개혁의지에 대한 불신감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를 반영, 지난 11일 이후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한국에 대한 비판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은 "한국정부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하려 하기보다는 부족한 외화자금 확보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도 "한국이 자국경제의 파탄이 세계경제에 미칠 효과를
빌미로 IMF와 위험한 게임을 시작했다"며 IMF는 이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경고까지 한 바 있다.

이처럼 한국의 금융위기가 더욱 혼미해지자 한국경제 붕괴론까지 대두되기
도 했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정권교체를 앞두고 있어 현정부와 차기정부간 책임
소재를 둘러싼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한.미간 불협화음을 유발,
결국 국가부도사태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기했었다.

심지어 프레드 버그스텐 IIE소장은 "한국이 모라토리엄(채무상환중단)
선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도는
끝모를 추락을 거듭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의 합의이행 약속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외국 언론
들의 보도는 최근들어서 다소 누그러진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정부가 금융위기를 극복하기위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대외신뢰도를 높이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