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가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집권초기를 맞았다면 대통령당선자는
그와 비교되지 않을 경제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지난 11월말부터 닥친 외환.금융위기를 수습하고 나아가 실물경제의
경쟁력을 제고시켜 경제를 회생시키고 이를 위해 정부가 앞장서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해야 되는 입장에 있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현 우리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
되어 있으며 IMF, IBRD 등 국제기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책기조는 사실상
한국개발연구원 등에서 이미 80년대부터 건의해 온 정책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국제기구의 정책조율압력에 대해 경제적 주권 상실 또는 국가적 치욕
등으로 여기는 시각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국제기구들이 경제운용의 새로운 규범을 요구하는 강도나 속도가
빨라 과연 한국경제가 이를 소화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상을 고려한 향후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번 경제위기에서 보았듯이 실물경제가 어느정도 건실하다 하더라도
금융부문이 취약하고 외국의 자본이 일시에 유출될 경우 필연적으로 경제
위기를 겪게 된다는 인식이 각인되어야 한다.

금융기관의 건실화를 위해서는 과거 담보 위주의 관행에서 기업의
프로젝트별 안정성 성장성 자기자본 등을 심사하여 차등적 금리를 적용하는
등 대출관행의 선진화가 요구된다.

특히 부실채권이 과대하거나 방만한 경영을 하는 기업에 대한 대출을
자제하여 기업의 부실화, 금융취약성의 악순환을 막는 노력이 요구된다.

즉 금융의 선진화를 통해 기업의 재무구조 건실화를 유발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관치금융에서 벗어나야 하고 금융산업 경영의
합리화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주인있는"금융산업의 육성을 위해 금융산업의
소유권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둘째 한국경제가 당면한 복잡다기한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요구된다는 인식과 이를 "부정직한 정치적 해법"보다는 고통분담과
구조조정이라는 방식의 경제 순순환을 통해 점진적으로 경제위기를 해소하려
는 자세가 요구된다.

일례를 들어 향후 가장 큰 경제.사회이슈가 될 실업문제를 단기일내에 풀
수 있는 묘수는 없다.

실업문제 해소를 위한 수순은 우선 금융시장을 안정시켜 우량기업의 흑자
부도를 막고, 대외신용도를 제고시켜 외환위기를 하루속히 극복하는 것이다.

셋째로 실물경제의 국제경쟁력 강화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저축의 증대, 임금의 안정, 세율의 인상 등에 의한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 등을 통한 고비용구조의 타파와 안정기조의 유지를 통해
시계의 난기화에 따른 저축감소, 부동산투기의 확산, 투자심리위축 등에
기인한 저효율구조를 해소시키는 데 정책의 주안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제기구로부터의 "시장원리에 입각한 정책조율"의
압력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이미 사회적합의를 통한 노.사.정간의 고통분담을
호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제난국에 새 정부가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현 우리경제의 어려움을 모든 국민이 인지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정부주도의 사회적합의"와 "민간부문에서의 자발적인 경제살리기"
운동중 어느 것이 더 실효성이 있고 부작용이 적은지를 면밀히 판단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다섯째 경제주체들의 자발적인 고통분담을 유도하고 해외신용도를 높이며
향후 국가경제의 위기관리 효율화를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어
야 한다.

즉 한국은행은 우리경제의 "위기지표"를 정기적으로 외환공여 국제기구에
알리는 것보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대 국민적
협조를 얻어내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즉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현재 우리나라의
총외채, 대외재산, 외환보유액, 해외투자액, 장단기 자본수지(부채 차관 및
외국인투자)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시할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새정부는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기를 당부한다

경제문제에 관한한 인기영합식 단견에서 탈피하고 단기적 고통을 감내하더
라도 정도를 통해 경제위기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정부는 경제위기를 초래한 귀책사유의 규명에만 연연하지
말고, 경제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내 탓이오"라는
투철한 책임의식을 갖고 국민의 동의를 결집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
경제의 소생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하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