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급등에 따른 원자재 수입차질로 일부 생필품이 생산중단위기에 빠지고
수출마저 위협받는 등 금융과 실물부문이 서로 물고 물리는 인과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미 원유와 원면 나프타 등 주요 원자재의 재고가 품목에 따라 적정량의
절반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벌써부터 일부 기업에서는
원자재가 없어 생산을 중단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급격한 환율상승으로 수입업체들이 원자재수입을 포기하고 있는데다 국내
은행들이 수입신용장 개설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평균 5억3천만달러에 달하던 원자재 수입액이 이달들어 4억3천만달러로
대폭 줄어들었으며 이대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폭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유사의 원유재고는 1천2백만배럴로 평상시 하루평균 도입량 기준으로
5일도입분에 불과하다.

통산산업부가 수입신용장개설을 허용토록 금융기관에 촉구하고 가용외화
자금을 원유수입대금 결제용으로 우선 사용할수 있도록 재경원에 요청한
것도 사태의 절박성을 말해준다.

원유 뿐만이 아니다.

원면 원피 석유화학제품 등 주요 수출용 원자재와 곡물 사료 등 내수용
원자재 수급의 차질도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제분업체들이 한달도 못돼 밀가루값을 세번씩 올려도 소비자들은 불평
한마디 할수없는 처지이다.

원면은 수입신용장 개설이 완전 중단된 상태이고 석유화학제품의 재고는
월평균수요의 25~50%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국내수요의 절반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프타의 경우 수입신용장이
개설되지 않으면 1월중순부터 관련공장의 가동률이 50%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소식이다.

원자재가 부족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자 밀가루에서 보듯 내수용제품의
가격 폭등은 물론 수출업체들까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출업계는 무역금융시스템의 마비로 원자재수입은 물론 주문받은 수출마저
이행할 수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처럼 수출입금융체제가 마비되고 있는 것은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이 요구하는 자기자본비율 8%를 채우지 못해 신용도가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다 부실은행 정리에 대한 우리정부의 태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일부 은행에 대해 정부가 출자해 BIS기준 8%를 채워주기로
함으로써 은행들의 위기감을 어느정도 해소시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지만 언제 정리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지금처럼 은행들이 극도로 몸을 사림으로써 금융부문이 실물부문을
압박한다면 원자재의 수급상황이 악화돼 물가가 폭등하고 수출이 위기에
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하루속히 부실은행의 평가및 정리기준을 확실하게 밝혀 적어도
건실한 은행들마저 소문에 떠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대로 질질 끌다가는 막상 부실은행의 정리 자체보다 소문에 의한
부작용이 더 크겠기에 하는 당부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