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배추나 무까지도 값이 급등하면 금값이 되었다고 한다.

금은 그만큼 가치의 척도였다.

수천년동안 부의 상징, 영원불변의 심벌이었다.

IMF 체제라는 경제위기에 휘말리자 연일 기록적으로 폭등한 것도
금값이었다.

그런데 막상 세계시장에선 금값이 계속적으로 크게 떨어지고 있다.

금은 이제 외화보유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금을 투매하고 있으며 대신 채권등 고수익
금융상품을 사들이고 있다.

컴퓨터 자동거래등 새로운 금융관행이 정착되면서 금의 안정성보다는
변동성과 수익성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금은 이제 액세서리 세공용으로만 기능이 축소되고 있는 수천년만의
무상에 빠져버린 셈이다.

금은 세공용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연성과 전성이 다른 금속보다 뛰어나다.

1g의 금을 늘이면 3천m의 금실을 뽑아낼수 있다.

금박의 두께는 1만분의 1mm까지 얇게 할수 있다.

이 때문에 장식품은 물론이고 현재는 식품 화장품 약품으로까지 쓰인다.

일반상품은 생산량과 가격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지만 금은 다르다.

전세계 금생산량은 보유량의 1~1.5%밖에 안돼 생산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미국등 주요국의 금보유량은 구소련과 남아공화국 연간 생산량의 1백배에
달하며 미국 한나라만으로도 25~30년간 생산분을 비축하고 있다.

금은 고대로부터 생산된 것이 딴 상품처럼 써서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불변성이 막대한 비축으로 이어졌다.

황금은 옛날부터 영화의 극치였다.

제왕들은 금관을 썼고 금에 대한 무궁한 욕망이 중세에 연금술을
발달시켰다.

마르코폴로의 모험이나 콜럼버스의 항해도 동양의 금을 구하려는 것이
첫째 목적이었다.

남아프리카와 호주의 개발도 골드러시 덕분이었다.

이런 인류의 우상같은 금이 이제 금융상품의 위력에 밀려나고 있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이 실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금융상품을 잘 관리하지 못해 경제위기를 맞은 우리가 다시 한번 눈떠야
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