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문단은 이렇다할 문제작 없이 페미니즘공방등으로 뜨거웠고, 출판계는
잇따른 부도사태로 어려운 해를 보냈다.

문학논쟁중 가장 거셌던 건 이문열씨의 소설 "선택"을 둘러싼 공방.

조선시대 여성을 불러내 현대여성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한 "선택"은 주인공
장씨의 입을 빌어 오늘날의 "잘못된 페미니즘"을 꼬집으면서 이경자 공지영씨
등 여성작가의 소설제목을 인용해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 여성작가들은 거세게 반발했으며 몇몇 문예지도 이를 집중비판하는
특집을 꾸몄다.

여기에 "이야기와 언설이 혼합된 행장양식의 첫소설화" "전업주부의
긍정적 주체화"등을 성과로 꼽는 옹호론이 맞서 열기를 더했다.

올해는 또 "내면소설"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는 계간"세계의 문학"을 통해 "은어는 없다"며
윤대녕소설을 질타했으며 이상경씨는 "소설과 사상"을 통해 "자기중심의
시각과 소녀적 감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신경숙소설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여기에 문학평론가 이성욱씨도 신경숙소설의 독백적 폐쇄성을 고집으며
논쟁에 가세했다.

민족문학 진영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둘러싼 논쟁도 빼놓을수 없다.

문학평론가 진정석씨가 "모더니즘을 리얼리즘과 하나로 봐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김명환 윤지관씨등 기존 리얼리즘 논자들의 격렬한 반박이
따랐고 이후 이광호 황종연씨등의 근대성 논의와 맞물려 확대일로에 있다.

신세대작가들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던 것도 주목거리.

김영하 김이태 백민석 김연경 송경아 김설 배수아 김호경씨등 신예들의
활동을 놓고 평단에서는 "일부작가의 경우 문장기본이 안돼 있다"는 악평과
"미학적 사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호평이 팽팽하게 맞섰다.

특히 "오늘의 작가상"으로 데뷔한 신인 김호경의 소설 "낯선 천국"에
대해 월간"현대문학"과 "세계의문학"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올해 출판계의 여정은 어느 때보다 험난했다.

3월 고려원 부도를 신호탄으로 경영난에 직면한 군소 출판사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으며 최근에는 대형출판사인 계몽사마저 1차부도로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일시중단됐다.

도매상들은 한달에 하나꼴로 쓰러졌다.

도매상 부도는 영세성과 중복거래, 과당경쟁등 구조적 결함과
할인.대여점의 증가, 참고서시장 축소에 따른 소매상 위축, 중대형서점
증가로 인한 출판사와의 직거래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출판계의 또다른 악재는 모방과 베끼기 상혼.한 출판사의 책이 베스트셀러
기미를 보이면 곧바로 비슷한 제목이나 내용의 책을 내고 베끼기나 사재기로
출판문화를 어지럽힌 사건들이 잇따랐다.

특히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의 성공이후 "~가지"라는 제목의
책이 쏟아져 나와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종합순위를 휩쓴 적도 있었다.

게다가 베스트셀러 순위가 일부 출판사의 사재기에 의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황속에서도 사회과학과 아동도서의 출판은 상승세를 보였다.

출판협회 집계에 따르면 올 1~11월 발행된 책은 2만5천1백72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증가했다.

이가운데 아동도서가 25%(4천2백55종), 사회과학서가 15.8%(4천31종)
늘었다.

총발행부수도 2만5천1백72부로 23.8% 늘었는데 특히 사회과학(1백6%)과
아동분야(22%)가 많이 나왔다.

경제.경영분야에서는 불황을 반영하듯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경제기사는 돈이다" "부동산 재테크" "돈버는데는 장사가 최고다"등 "돈"과
관련된 책이 러시를 이뤘다.

<고두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