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단 부실기업을 인수할 경우로 한정해 30대그룹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부의
대기업정책에 대한 일대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하에서 부실기업이나 부실금융기관의 정리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그동안 인수합병(M&A)의 걸림돌로 지적되어온 공정거래법
상의 각종 규제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IMF가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화 원인을 계열사간 무분별한 상호채무
보증이라고 지적하고 있어 채무보증 자체를 아예 없애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현행 대기업정책 기조를 크게 흔들지 않는 선에서
공정거래법 시행령만 개정, 총액출자한도에 대한 규제를 우선 완화하기로
했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로 자산총액중 자기자본비율이 25%를 넘는 30대 그룹
8백19개 계열사중 3백2개 계열사는 부실기업이나 부실금융기관을 인수할때
출자총액제한을 3년동안 유예받게 돼 부실기업정리에 일단 숨통이 터이게
됐다.

지금까지는 기업을 인수하고 싶어도 출자총액한도라는 규제에 묶여 인수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예외인정을 받게 되는 인수대상회사는 <>화의.법정관리 또는 파산을 신청한
회사 <>부도유예협약 적용 기업 등 채권금융기관들이 정상화 또는 부실채권
정리가 필요하다고 선정한 회사 <>은행관리회사 <>재경원장관이나 증관위
금통위 등으로부터 제3자 인수를 권고.알선받은 부실 금융기관으로 한정했다.

한편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규제정책인 출자총액한도의 완화나 채무보증의
폐지 등에 대해서는 금융개혁의 정도와 속도, 경제실정에 맞춰 검토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96년 개정된 현행 공정거래법상에는 내년 3월말까지 30대 그룹에 한해
계열사간 출자총액을 순자산의 25% 이내로 낮추고 빚보증한도는 자기자본의
1백%로 줄이도록 규정하고 있어 4월 이전에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 어렵다는
입장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년 4월이후에는 채무보증 완전 해소 시기, 출자총액한도
완화, 시장지배적(독과점)사업자 선정문제 등에 대한 종합적인 재검토가
이루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그동안 정부가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해 금지하고 있는 지주회사제
의 도입여부도 조만간 판가름날 전망이다.

< 박영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