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

요즘같은 경제위기속에서 어느 기업에서나 아쉬움을 갖고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기업들은 대기업들의 연쇄부도와
금융위기등 총체적 경제위기속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고 새해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산업용 전원공급기(SMPS)를 생산하는 화인전자, PCB업체인 기라정보통신
등은 올해초부터 예상되는 경기하강에 대비해 미리미리 준비한 유비무환
기업들이다.

위기속에서도 차질없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내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기약할수 있는 힘은 바로 그동안 위기의식을 갖고 피나는 노력을 해온데서
나오는 것이다.

SMPS를 생산하는 화인전자(대표 박찬명)의 생산라인 직원들은 올들어서부터
한쪽 작업장갑을 벗고 일을 했다.

장갑을 끼고 일하면 손을 보호할수 있지만 아무래도 손놀림이 둔해지기
때문에 벗어던진 것.

생산성 향상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하나다.

박찬명 사장은 올해초 불경기와 다국적기업의 진출을 예상, 허리띠를 바짝
조였다고 한다.

우선 인원의 정예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 1백30여명이던 종업원을 1백명선
으로 정리했다.

대신 급여를 40%나 인상하면서 대대적인 생산성향상및 품질관리 운동에
돌입했다.

그 결과 잔업없이 격주휴무를 하면서도 생산성은 40% 향상됐다.

또 다국적기업의 진출에 대비해 2년간 20억원을 투자, 경쟁기업의 주력
상품에 버금가는 제품 6백여종을 개발해 하반기에 절반이하의 가격에
내놓았다.

몇달전 예상대로 세계최대의 다국적기업이 국내 대기업그룹 계열사와
손잡고 진출했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가 돼있어 박사장은 느긋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내년부터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유럽의
CE마크 인증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해외광고도 시작했다.

또 내년말부터는 국내 설비투자경기가 풀릴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비해
지난달 20억원을 들여 본사 인근 공장을 인수, 설비 확장에 나섰다.

이 공장은 최근 자구노력에 나선 대기업이 매물로 내놓은 것이어서 기업
경영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업계에서 화인전자는 사무실같이 청결하고 아늑한 생산라인과 휴게실
탈의실 등 각종 복지시설및 근무환경이 좋기로 소문난 회사이다.

박사장은 이런 복지와 번영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잘 나갈때 어려운 시절에
대비하는 경영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87년 창업, 해마다 40%이상의 고성장을 해온 PCB생산업체인
기라정보통신(대표 강득수)은 올해초 경영위기상황에 대처할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검토한 결과 사업의 위험분산이 필요하다고
판단, 기존사업의 고도화및 연관시장 진출 등으로 사업을 조정했다.

기존의 PCB사업은 통신용 고부가가치 PCB및 PCB에 칩을 실장한 보드의
가공까지로 사업구조를 고도화했다.

또 PCB생산기술을 응용한 고부가가치사업을 찾은 결과 반도체 칩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번인보드 개발에 뛰어들어 국산화를 이뤘다.

하반기부터 양산에 들어간 이 제품은 월 1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구조조정을 위해 이 회사가 올해 투자한 금액은 1백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내년에는 올해매출 4백25억원보다 대폭 신장된 6백억원의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이중 4백50억원은 올해 시작한 신규사업에서 달성할 전망이다.

반도체 테스트장비업체인 연우엔지니어링(대표 이건환)은 적절한 시기에
투자해 투자비를 절약한 케이스.

올해초 반도체장비 사업에 필요한 차세대 첨단기술을 얻기 위해 실리콘밸리
진출을 검토한 이 회사는 자체 분석결과 올 하반기에는 무역적자 등으로
원화가치절하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상반기에 20억원을 투자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사및 벤처회사 등 4개법인을 한꺼번에 설립했다.

뛰어난 예측력 덕분에 많은 비용을 아낀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