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작가이며 철학자인 페터 비에리는 저서 <삶의 격>에서 ‘존엄’을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식으로 정의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의 세 가지 차원에서 자신에게 자문하는 데서 존엄이 인식된다고 했다.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느끼는 사건을 겪으면 그 사건으로 잃어버린 주체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 삶을 가로막는 방해물은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존엄을 지키지 못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압박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되고 싶은 자기 모습을 지향하는 과정이 바로 삶이다. 그러므로 ‘존엄’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영화 ‘소수의견’으로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휩쓴 김성제 감독이 만든 ‘보고타’는 ‘1997년 국가는 부도가 났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라는 폭풍을 피하지 못한 스무 살 국희(송중기 분)와 그의 가족은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아버지 송근태(김종수 분)는 그가 박 병장(권해효 분)이라고 부르는 한인 상인회의 권력을 쥔 자를 찾아가 그에게 의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우 아닌가’라는 아버지의 말에도 박 병장의 태도는 냉담하다.아무런 능력도 인정받지 못하고 내쳐진 아버지를 보며, 낯선 땅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존엄성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체감한 국희는 바로 박 병장에게 굽히고 그의 밑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죽기 살기 근성으로 박 병장의 눈에 띈 국희는 박
2014년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몇몇 고객사 주문을 삼성에 뺏겼다. 최첨단 공정에서 삼성 점유율이 TSMC를 넘어설 것”이라고 토로했다. 경쟁자 부상에 바짝 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TSMC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웨이저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8일 열린 ‘제12차 대만 국가과학기술회의’에서 여유로운 농담을 건넸다. “칩이 부족하니 고객들이 TSMC에 너무 예의 바르게 대해줍니다.”TSMC는 40년 가까이 위험하고 고된 파운드리 관련 업무를 묵묵히 해냈다. 밤새워 일하고 연구개발(R&D)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부단한 노력은 고객의 인정으로 돌아왔다. 수준 이하의 설계도를 건네도 척척 칩을 뽑아내는 솜씨에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칩 제작을 부탁했다. 우리의 상황은 정반대다. 지난주 한국 최고의 테크 리더들이 모인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에서는 ‘K반도체’에 치열함이 사라졌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주 52시간 제도를 핑계로 느슨하게 일하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찾다가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게 반도체특위의 지적이었다.정부 정책도 비교된다. 대만 정부는 ‘2+4 인재 양성 계획’을 추진해 매년 유학생 2만5000명을 지원하고 인공지능(AI) 인재 10만 명 이상을 육성하고 있다. 이들이 TSMC의 숨은 경쟁력이다. 반도체 기술을 앞세워 미국·중국과 함께 글로벌 AI 3대 국가가 되겠다는 게 한국 정부의 구상이지만 대만보다 행동이 굼뜨다. AI산업의 ‘쌀’로 불리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이슈만 해도 그렇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ldquo
최근 몇 년간의 금융시장 움직임을 되돌아본다. 2020년 후반부터 코로나19 확산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 불안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고, 실제 2년 뒤에는 각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준동하며 미국 등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정책이자율을 높였다. 다시 2년이 지난 현재, 높아진 이자율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한몫했고 이로 인해 실물경제가 주춤하면서 올해 중반부터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이 내려오기 시작했다.상승했던 정책이자율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금융시장에서 이견이 없다. 그런데 시장이 관심을 갖는 내용은 하락 ‘속도’다. 하락 속도가 생각보다 늦어진다는 것은 금융시장에서 하락이 예상되다가 상승으로 반전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런 점은 미국시간으로 이달 18일 오후, 한국시간으로 이달 19일 오전에 나타난 금융시장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12월 전반부에 일어난 정치적 변동 와중에 내려진 미국 중앙은행의 결정은 우리나라 외환시장을 비롯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였다.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 가치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년에 여덟 번 계획된다. 올해 마지막 FOMC 미팅이 미국시간으로 12월 17일과 18일 열렸으며, 위원회는 미국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FOMC 회의에는 19명이 참석하는데, 이 중 12명이 투표에 참여한다. 금리를 내리는 결정에 11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 의견을 표했다.여덟 번의 FOMC 회의 중에서 각 분기 후반에 열리는 네 번을 마치고서는 참석자 19명이 미국 경제의 움직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제가 미래에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대한 그들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