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유연화조치를 강력히 요구함에 따라 그동안 김당선자와 노동부가
공언해온 "정리해고 최대한 억제" 방침이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김당선자측은 이날 "임금삭감만으로 부도를 방지할 수 없을 때는 해고가
불가피하다"며 미국측 요구에 원칙적 수용 입장을 밝혔다.
"6개월간 임금 및 해고 동결", "양적 구조조정 대신 질적 구조조정 단행"
등 선거기간중 밝힌 대량실업방지공약을 사실상 철회한 셈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정부의 요구를 수용, 정리해고제 시행시기를 앞당기고
해고요건을 완화할 경우 노동시장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또 변화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해 노동법파동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정리해고에 관한 미국정부나 IMF(국제통화기금)의 입장은 간단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현행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제정, 정리해고제
시행시기를 앞당김은 물론 4가지 해고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물론 정리해고제 도입 및 요건 완화는 그동안 경영계가 요구했던 사안이다.
경영계는 지난해 노동법 개정 논의 때도 이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정리해고 요건을 현행 판례보다
오히려 엄격하게 제한하고 시행시기도 99년3월까지 2년간 유예했다.
정리해고 본격 도입 시기를 앞당기고 요건을 완화할 경우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이 불가피해진다.
노동부는 그동안 98년중 경제성장률이 3%에 달할 경우 실업자가 올해보다
30만명이상 늘어 85만~90만명(실망실업자 35만명 제외)에 달할 것으로 예상
했다.
또 성장률이 3%를 밑돌 경우엔 실업자가 1백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은 정리해고를 최대한 억제한다는 전제하에 나온 것이다.
미국측 요구대로 정리해고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나면 실업자가 1백50만명
을 넘어서고 구직활동을 포기한 실망실업자를 포함할 경우 2백만명에 육박해
그야말로 "실업대란"이 불가피해진다.
최근 노동계 경영계 정부 및 공익대표들이 "임금안정 고용안정 물가안정"을
골자로 하는 사회적합의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구조조정 과정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이 상황에서 노동계의 몫인 고용안정을 떼낸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구조조정도 불가피하고 고용안정도 절실하지만 두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다.
IMF측 요구를 받아들이면 노동계가 반발하고, 노동계 요구를 수용하면 IMF
구제금융이 끊긴다.
따라서 고용안정과 구조조정을 원만히 해결하는 작업이 새로 출범할 김대중
정부의 첫번째 시련인 셈이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