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요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전에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새벽부터 심야까지 정말 발바닥이 닳도록 뛰고 있다.

당선자가 그렇게 나서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일부 비판적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대선기간의 피로도 풀지 못한채 밤낮
으로 뛰는 당선자의 모습에서 오랜만에 희망의 빛을 발견한 듯하다.

그러나 당선자측 인사들의 움직임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입"이 너무 많다.

당선자측 사람들은 자신의 공을 부각시키려는듯 발표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미국,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도 그런 경우다.

이 사람이 나서 접촉성과를 흘리면 저 사람이 질세라 다른 얘기를 흘리고
있다.

또다른 인사는 이같은 말들을 믿고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추측보도다"라고
매도한뒤 자신의 분별있는 처신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이러다보니 정부는 협상의 주도권을 상실한채 당선자측만 멍하니 쳐다 보게
되고 미국 IMF측은 이틈을 놓칠세라 정부보다는 당선자측을 각개격파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당선자측도 이런 혼선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지난 23일 밤 10시반께부터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첫 12인비상대책위 회의에서는 모처럼 함구를 다
짐했다.

당선자측 대표인 자민련 김용환 부총재는 "금융.외환 문제인데다 위기국면
탈출 대책인 만큼 일일이 알려드릴 수 없다는게 원칙"이라며 "오늘 회의
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새벽 2시무렵 회의가 끝난 뒤 한동안 이런 입장은 지켜지는 듯했다.

정부측 위원들은 입을 굳게 다문채 의원회관을 속속 빠져 나갔다.

정부측 위원으로는 제일 늦게 방을 나선 임창열 부총리도 수십명의 취재진
이 질문공세를 퍼부었지만 "노 코멘트"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당선자측 6인은 정부측 위원이 모두 회의장을 떠난뒤 취재진을
상대로 브리핑을 했다.

일부 위원이 "그만 하자"고 제동을 걸었지만 함구다짐은 잊은 듯했다.

허귀식 < 정치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