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24일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의 발언은 지론인
"민주적 시장경제론"에 입각한 것으로 당선이전 발언들과 크게 다를게 없다.

김 당선자가 지난 19일 당선직후 "국제경쟁에서 이겨 내기 위해 체질개선을
하는 기업은 애국기업이다"고 한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강력히 주문했다는 것 정도가 주목할만한 점이다.

그러나 김당선자는 구조조정을 강제하지 않고 기업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며 "대기업에 대해서는 독과점과 불공정거래가 문제가 되지
않는한 전적인 자유를 주겠다"고 말해 민주적 시장경제론에 따른 원칙을
견지했다.

이와관련, 김 당선자는 정경유착 관치경제의 근절을 강조해 왔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김당선자는 "아무 두려움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라. 그러나 절대로 특혜는 없다"며 이를 다시 확인했다.

김 당선자는 이어 "정치자금으로 기업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열심히 해서 이겨낸 분은 애국자로 대우하겠다"고 말해 시장경제확립에
솔선수범하는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특혜"대신 "정신적 우대"를 선언했다.

김 당선자는 구체적으로 "대기업은 정치자금법에 의해 여야 정당에 공정
하게 정치자금을 주도록 하라"며 특정정치세력과의 밀착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김 당선자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의 또다른 원칙인 "대기업-중소기업
쌍두마차체제"에 대한 신념도 변치 않았음을 확인했다.

김 당선자는 "중소기업은 살려야 한다.

우리는 대기업에 의한 수직적 지배같은 것은 방관하지 않는다"며 수평적
협력관계를 강조한뒤 "전 세계에서 대기업은 전차처럼 중소기업은 개미군단
처럼 뛰어 달라"고 요청,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의 장을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까지 확장했다.

김 당선자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에따른 공생.공영원칙을 노사관계와 관련
해서도 되풀이해 천명했다.

김 당선자는 "기업은 노동자의 사기를 올려 주고 노동자는 생산성 향상을
책임져야 한다"는 역할분담론을 제시한뒤 "임금을 동결하고 감봉할 것이며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이 감원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와 선진국기준에 따라 정리해고제도입이
불가피하지만 기업들이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둘 것을 당부한 것으로 풀이
된다.

김 당선자 자신의 정치적 운명과 경제회복문제를 일체화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김 당선자가 "나 자신은 지금 심각하고 중대한 고비에 서있다.

과연 내가 IMF를 극복하는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밝힌
대목은 그가 얼마나 경제위기해결에 고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김 당선자는 평소 민주적 시장경제론이 "대기업때리기이론" "좌파경제론"
으로 오해받고 대기업들이 여당에만 정치자금을 기탁해온 것에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런 오해 때문에 김 당선자는 지론에서 벗어나지 않는 얘기를 반복해
재계에 전달하고 있다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김 당선자는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런 맥락에서 거듭 재계의 과거에 대한
"사면"의 뜻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과거처럼 권력에 의한 제재도, 특혜도 없을테니 쓸데없는 걱정
이나 기대는 하지 말고 세계를 향해 뛰어 달라"는게 김 당선자의 메시지라는
지적이다.

< 허귀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