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외국환관리법 폐지 요구는 한마디로 외환거래
의 자유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와 관련한 정부의 통제수단을 완전히 차단
하겠다는 의도다.

지난 62년 처음 제정된 외국환관리법은 외국환 및 기타 대외거래를 합리적
으로 조정.관리함으로써 대외거래를 원활히 하고 국제수지의 균형과 통화
가치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법과 시행령 및 규정에는 해외여행 경비 또는 대외송금의
한도 규제는 물론 외국환은행의 업무범위, 외국 금융기관과 외국법인의
투자 및 영업범위, 수출입자금 결제방법, 내.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범위 등
모든 자본거래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외국환관리법은 크게는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 통제와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 통제로 구분된다.

이중 외국자본 유입의 경우 <>3년이상 회사채 등 장기채시장 개방(12일)
<>외국인 1인당.종목당 투자한도 50% 확대(15일) <>상업차관 전면 허용
(15일) <>환율변동제한폭 완전 폐지(16일) <>국.공채 등 단기채시장 개방
(23일) 등 최근 IMF의 자본시장 개방요구를 이달중 대부분 수용함으로써
사실상 외국환관리법에 의한 통제수단을 이미 상실한 상태다.

특히 내년 2월부터는 양도성 예금증서(CD), 기업어음(CP) 등 단기 금융상품
시장이 개방되고 국내 은행의 인수.합병(M&A)도 전격적으로 허용될 예정
이어서 외국환관리법의 폐지 여부에 상관없이 해외자본의 국내 유.출입은
거의 자유화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외국환관리법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기본적으로 이 법이 외환거래의 자유화를 가로막는 원천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외국환관리법이 폐지될 경우 우리나라는 자본시장 완전 개방에 따라
예상되는 해외 핫머니(투기성자금)에 의한 금융시장 교란 외에도 국내
자본의 급속한 해외 유출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외국환관리법은 현재 1인당 해외여행경비를 1만달러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해외송금도 월 5천달러, 연 1만달러 이내로 규제하고 있다.

또 기업의 해외 부동산 취득을 업무용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개인의 경우는 이를 원천 불허하는 등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에
대해서는 아직 상당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외국환관리법의 폐지는 곧 이같은 국내자본의 무분별한 해외 유출을 제어할
통제수단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부로서는 단지 자본의 유.출입
규모를 파악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치게 된다.

즉, 내국인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도 않고 재산을 해외로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는 외환관리법 폐지 요구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나 내부적으로 다른 관계법령에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을 통제
하는 규정을 두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미국과 IMF가 이를 용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
외국환관리법 폐지를 둘러싸고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