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기억으로 살아나는 얼굴들,생활이 각박하고 힘들어질수록 더욱
또렷하게 살아나는 얼굴이 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고 추억을 쌓아가고 있지만 그중에 유달리
깨뜨리고 싶지 않은 추억이 있다.

각자 집안의 어른으로,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릴적 내 모습을 되찾고 싶을 때면 찾게 되는 것이 동문회다.

옆집 또는 이웃마을에서 살아온 우리들.

코흘리던 놈, 뜨거운 햇볕아래서 발가벗고 강에서 미역감던 놈, 어릴적
짝사랑의 대상이던 찬바람 쌩쌩 돌던 새침데기 계집애, 씨름으로
한가락하던 덩치좋은 녀석, 언제나 말이 없던 애 등..

우리 단월회는 어린시절 동창들끼리 격의없이 만나 생활속에 쌓인 때를
벗고 마음껏 웃어볼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87년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회원은 서울에 올라와 있는 단월초등학교 제16회 동창들.

총 회원은 50여명, 1년에 두번 정기모임을 갖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친목도모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회원가운데 힘든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줘 친척보다도 든든한 모임이
되고 있다.

열성 멤버는 심윤하(인쇄업) 이문석(무역업) 임학규(개인사업)
허성수(무역업) 황영기(개인사업) 이규범(명문약국 대표)씨 등.

올해 모임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자리는 5월 스승의 날에 연 은사초청모임.

6학년때 선생님들을 초청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스승의 은혜"노래도
부르고 선물을 드리면서 뒤늦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올 4월에는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단월초등학교 교정에서 많은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세월의 흐름을 확인하고 또 탓도 해보는 동문체육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는 우리 단월회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여자동창모임, 고향
충주시에 있는 동창모임이 연합한 대운동회였다.

뛰고 넘고 구르다보니 35년만에 다시 코흘리개 시절로 돌아간 듯해
감회가 새로웠다.

이 운동회는 내년부터 정기적인 가족동반 모임으로 정례화 된다.

흰 머리카락이 부쩍 늘어난 친구.

흐르는 세월이 아쉬워 거꾸로 머리가 검어진 젊은이(?), 머리숱이 거의
없어진 중년의 모습, 살찌고 수줍음이 없어진 아줌마들.

이제는 모두 나이들어 자기 분야에서 한 몫을 하고 있는 친구들.

서로를 바라보며 듬직한 모습속에 철부지 개구쟁이 시절의 추억이
살아나기에 더욱 사랑스런 친구들이다.

앞으로는 이 모임을 더욱 활성화해 후배와 사회를 위한 조그만 밀알이
되는 모임으로 키우기 위해 애쓸 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