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들의 국내기업 M&A(인수 합병)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IMF체제아래 자본시장개방이 급격히 진전되고 고환율에 따라 인수비용이
절반정도로 떨어지자 일찌감치 M&A전선에 나섰던 씨티은행, 홍콩상하이은행
등 금융기관은 물론 제조업체인 바이엘, 보쉬, 유통업체인 월마트 등도
잇따라 한국기업 인수를 위한 탐색에 나서고 있다.

25일 금융 및 업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기업의 M&A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업종은 금융과 제약분야다.

씨티은행과 체이스맨하튼은행은 정부에 제일은행등 국내은행에 대한 인수
의사를 타진해왔고 홍콩상하이은행등 다른 외국은행들도 실무단을 구성,
정보수집과 분석작업을 상당히 진행시켜 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 및 화학업체인 독일 바이엘도 최근 독일 본사에 한국
기업 M&A 담당자를 별도로 지정하는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몇달전에도 독일본사임원이 한국을 방문, M&A 중개업체 등을 통해 국내
제약업체 매물을 물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 영국의 G, 미국의 F, 스위스 N, R, 의약전문 유통업체 J등이 국내
제약업체 사냥꾼대열에 올라있다.

미국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한국업체 인수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미 목좋은 위치에는 기존 유통업체들의 점포가 들어서 있기 때문에 한국
시장 진출의 후발주자인 월마트로서는 M&A가 가장 효율적인 유통망구축 방법
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월마트는 최근 뉴코아계열의 할인점 킴스클럽과의
인수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다른 업체를 물색중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업체인 독일의 보쉬도 지난 10월 기아의 계열사인
모스트를 인수한데 이어 추가 M&A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기업들의 M&A에 경계감을 나타내던 국내업체들도 최근들어 "외국기업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구조조정에 따른 사업매각은 불가피한데 재계의 너나없는 자금난으로 국내
에서는 인수기업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2달새 사업매각을 발표한 업체들은 거의예외없이 "외국업체와
협상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중동지역 석유메이저, 한일그룹의 제주 하야트는 미국업체,
만도기계는 미국 및 독일업체 등을 지목하며 해외업체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국제 M&A 전문 중개업체까지 등장했다.

"스트라톤"이라는 업체는 "국제 M&A 전문기관"을 표방하고 몇달전 문을
열었다.

스트라톤측은 "해외투자가의 의뢰를 받아 대형호텔, 백화점 및 할인점,
수익성있는 부동산을 찾고 있다"며 "제휴관계에 있는 해외 M&A업체들을 통해
인수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M&A전문중개업체나 금융기관, 법무및 회계법인의 M&A팀들도 사실상
국제M&A가 주업무로 돼 버렸다.

매물은 잔뜩 나와 있지만 국내에는 이를 소화할 업체가 드물어 어차피
새주인을 해외에서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한 M&A업체 사장은 "외국업체와 국내업체가 짝짓기를 위한 물밑작업이
십여건 진행중"이라고 귀뜸했다.

심지어 외국계 컨설팅업체들에도 국내 특정업체의 인수 타당성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가 잇따르고 있다.

모 컨설팅업체 한국지사장은 "해외의 고객기업들이 한국업체들의 상황을
문의해 오는 건수가 무척 많다"며"특정업종에 한정된게 아니라 전업종에서
다양하게 관심을 표명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와관련, "국내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른 부담을 외국인이
적절히 분담하는게 경제난 타개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며"그러나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성 M&A나 약점을 이용, 건전한 기업의 경영권을 강제로
탈취하는 적대적 M&A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혜령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