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열 부총리가 26일 열린 은행장회의에서 "기업대출을 확대하라"고
간곡히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말까지 은행대출창구는 꽁꽁 얼어붙을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한국은행이 본격적인 통화환수에
나선데다가 은행들도 연말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8% 이상
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절박한 지경에 처해 있어 기업대출을 늘리기는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들은 정부의 채근에 대한 "성의표시"를 위해 수출환어음담보대출을
늘리는 방안만 염두에 둘뿐 기업대출은 슬그머니 회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연말자금사정은 사상최악의 상태로 나빠질 전망이며 이런 상황은
내년초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통화환수가속=한은은 26일 은행들에 통안증권을 파는 방법으로
1조5천억원을 14일물로 빨아 들였다.

지난 23일과 24일 각각 2조3천7백10억원과 1조원을 흡수한 점을 감안하면
총 4조3천7백억여원을 환수한 셈이다.

이는 한은이 제1,2금융권에 지원키로한 특별대출 11조3천억원중 이날까지
집행한 자금 5조5백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IMF는 특히 이달 M3(총유동성)증가율을 15.4%로 낮추고 본원통화잔액을
25조3천억원을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어 한은은 추가적인 통화환수에 나설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지난 11월 M3증가율이 16%대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통화환수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IMF는 또 단기금리(콜금리)를 장기금리(회사채수익률)보다 높게 유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은은 이에따라 이날 통안증권매출금리를 연 35%로 정했으며 앞으로도 이
이상으로 금리를 유지할 계획이다.

<>은행 자기자본비율 맞추기 비상=은행들은 지금 BIS기준 자기자본비율과
전쟁중이다.

연말 BIS비율을 8%로 이상으로 높이려면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출금을 회수
하는게 지름길이다.

정부가 아무리 기업대출을 늘리라고 독촉해도 실제로는 대출금을 늘릴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임창열 부총리는 이날 은행장회의에서 "지난 24일 4조4천억원의 은행
후순위채를 인수함으로써 BIS 자기자본비율은 평균 1-2% 높아졌다"며
"이에따라 추가 대출여력이 30조여원 늘어나게된 만큼 기업대출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은행장들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되내이고 있다.

정부의 후순위채인수가 도움이 된건 사실이지만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선
대출금을 늘릴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특히 연말 BIS 비율이 얼마냐가 내년신인도를 좌우하는 만큼
어떡하든 대출을 최소화,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예정이다.

구체적으론 기업대출동결 당좌대출회수 가계대출회수 미수이자회수 등을
생각하고 있어 당장 기업대출이 늘어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금융계에서는 이와관련, "12월31일 대란설"마저 돌고 있는 실정이다.

<>불안한 외환시장=미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달러당 1백원 오를 때마다
은행 BIS 비율은 0.1%가량 하락한다는게 은행들의 계산이다.

외화자산이 원화로 계산돼 위험가중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26일 원-달러환율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언제 다시 튀어 오를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늘리기는 무리라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할때 정부의 기업대출확대 독려는 적어도
연말까지는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의 부도사태는 확대재생산될 수 밖에 없다.

<하영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