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증시가 마감된 27일 증권가 표정은 IMF한파와 증시침체로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한햇동안의 희로애락을 역사속에 파묻고 희망찬 새해를 염원하는 행사인
호가표 날리기도 없었고 객장 투자자들의 다정다감한 덕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보다 지방발령을 받은 증권사 직원은 이산가족을 걱정해야 했고
객장투자자들은 무더기 기업부도 사태를 걱정해야 했다.

시장참가자 모두가 "앞날을 헤아릴 수 없다"는 무거운 얼굴이었다.

<>.폐장일에 객장에 나와있던 투자자들은 아침부터 청구그룹의
화의신청소식을 접하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LG증권 명동지점에 나와있던 최모(48)씨는 "주식투자 10년만에 이번처럼
씁쓸한 연말은 처음"이라며 "IMF로부터 자금지원이 이뤄져 외환시장이
안정된다 해도 청구그룹 사태에서 보듯 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일어난다면
내년에도 역시 주가가 회복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근심어린 얼굴.

쌍용증권 대치동지점의 김종준 차장은 "보통 연말이면 투자자들과 함께
다음해 주가에 대해 전망도 해보고 투자방향도 잡아보는게 보통인데
이번에는 서로 주식이야기는 되도록 꺼내지 않고 연말인사만 주고받고
있다"고 지점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폐장일에 정기 연말인사를 발표해 더욱 뒤숭숭한
분위기.

쌍용투자증권은 본사 근무인원을 지점에 전진배치하는 등 2백10명에
대해 대규모 인사를 실시했다.

또 삼성증권도 1백여명의 대규모 인사발령을 냈다.

특히 본사직원들 가운데 갑작스레 지방지점에 발령을 받은 직원들도 많아
전체 회사 분위기가 극도로 침울한 모습.

지방 지점에 발령받은 쌍용증권 본사직원은 "지방근무를 하려면
가족들과 헤어져야 하는데 당장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

<>.증권사 직원들은 한결같이 "올해처럼 힘들었던 한해는 처음이다.

악몽속을 헤맨것 같다"거나 "주가폭락으로 남은 거라곤 울화통과
깡통뿐"이라며 사상 최악의 97 증시를 회고.

그들은 또 내년을 기약하자는 말대신 "살아남아야겠다"는 부담감이외엔
남는 것이 없다는 반응.

특히 고려증권과 동서증권의 부도에 따른 충격파가 내년에는 더욱 증폭될
것이라며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표정.

<>.외국인투자자들의 "필자" 주문을 받아내느라 눈코뜰새 없었던
외국증권사 직원들은 "외국인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한 한해였고 외부로부터
우리경제의 성적이 그대로 반영된 주식시장이었다"고 폐장소회를 피력.

그들은 "외국인의 주문 덕에 올해 약정실적은 따뜻했지만 내년에
되돌아오지 않으면 할 일이 없어진다"며 내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

다만 내년에도 환율과 금융 및 산업계의 구조조정의 진척속도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냉정한 투자판단기준이 될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 김남국 / 김홍열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