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짐되는 기업은 빨리 정리해 달라"는 한마디가
재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좁게는 각 그룹이 무리한 다각화를 지양하고 주력업종에 힘을 모으라는
뜻이지만 넓게 해석하면 정부의 인위적인 산업구조조정에 앞서 재계가
자발적인 업종조정을 하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그래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주도하에 총수들이 모여 현대는
자동차, 삼성은 반도체 식의 "빅딜(Big deal :대협상)"을 벌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손병두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답변은 한마디로 "어려운 일"이란
것이었다.

-과잉투자 때문에 빅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국내만 보면 각 업종의 투자가 과잉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시장을 상대로 할 때는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경제가 수출주도형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 석유화학 등 모든 업종이 그렇다.

국내에 자동차 업체 하나,반도체 업체 하나씩만 있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각 그룹이 자신있는 부문을 서로 밀어주는게 필요하지 않은지.

"구조조정기에 스스로의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각 기업이 당연히
알아서 할 일이다.

전경련이 나서서 조정해줄 수 있는게 아니다.

말이 쉬워서 중재이지 업종몰아주기는 자칫 독과점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룹회장들이 담판짓는 빅딜이 불가능하다는 얘긴지.

"특정한 부문에서 그룹회장들이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하에서 부실계열사 매각 등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면 언제든지 서로 얘기할 수는 있는 것이다.

앞으로 2~3년내에 우리 산업계는 격렬한(drastic) 지각변동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 전경련등이 주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전경련에 구조조정 중재역할을 요구하지 않았나.

"그런 요구를 받은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구조조정은 무리라고 본다.

5공화국 시절의 부실기업정리는 결국 실패한 것 아닌가"

-구조조정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다행히 정치권에서도 그 필요성에 공감해 3월께는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될 것이다.

그러나 기다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임시국회가 끝나는 29일 열릴 주요그룹 기조실장 송년모임에서 논의해
구조조정촉진을 위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건의할 계획이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