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를 돕기로 함에
따라 국가부도위기는 일단 벗어나게 됐다.

그 대신 우리나라는 정리해고제실시 등 광범한 구조개혁을 약속하였고
금융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게 되었다.

그러면 지금부터의 우리경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지금 우리경제는 성장엔진을 바꾸고 제2의 창업을 시작하는 전환점에
서있다고 볼수 있다.

그동안의 성장엔진은 대기업과 정부를 양축으로 하는 것이었다.

경제성장의 기관차는 대기업, 특히 재벌기업이었고 그 추진력은
부채였으며, 부채는 은행과 외국에서 대주었고, 은행과 외국에서 대주도록
한 것은 정부였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엔진은 저임금의 위력과 산업보호의 방패가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드러커 교수나 캉드쉬 IMF총재는 공업화초기시대의 유물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그런데 갑자기 "고임금"과 "개방"이라는 두개의 태풍이 함께 밀어 닥친
것이다.

이들 태풍은 우리경제가 1만달러 소득을 자축하면서 기업은 세상물정
모르고 빚으로 몸집을 키우고, 근로자는 10년동안에 임금을 4배나 올리고,
소비자들은 마이카시대의 소비문화에 도취되어 있는 상황에서 밀어닥친
것이다.

그 결과는 산업경쟁력상실과 적자경제로 노출되어 우리를 태운 배는
삽시간에 침몰하게 된것이다.

경제발전과정에서 볼때 현재의 위기상황은 하나의 창조적 파괴과정이라
할수 있다.

새로운 성장엔진을 짜기 위해 기존질서와 낡은 체제가 무너지는 것이며
그것이 지금 산업위기 금융위기 외환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성장엔진은 완전개방과 시장경제 그리고 자유경쟁을 기본틀로
하는 것이다.

양보다 질, 부채보다 자기자본, 정경유착보다 생산성, 규모의 경제보다
전문화와 분권화가 경제의 승부를 가리게 될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외환위기를 계기로 IMF와 합의한 경제개혁조치들은
긴 눈으로 볼때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할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조치들이 새로운 엔진을 정착시키기까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과 문제점을 수반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우선 환자를 치유한다고 환자를 충격사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환율폭등, 견딜수 없는 고금리, 그리고 기업도산의 뒷수습을 위한 통화팽창
등을 생각할때 새해 물가는 10%이상 오를 요인이 있다.

그런데 물가를 5%이내로 지키기로 했으니 그러자면 충격적인
통화환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실제로 IMF의 요청에 의해서 지금 통화를 강력히 환수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이 지속되면 무수한 흑자도산이 불가피할 것이다.

내년에 경상수지는 오히려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럴
경우 통화면에서 신축적인 집행을 IMF당국과 협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금융시장의 완전개방에 따른 후유증에 대비하는 일이다.

환율이 안정되고 현재의 금융공황사태가 진정되면 한국은 국제적인 기업의
인수합병과 주식투자 그리고 채권투자의 가장 매력있는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핫머니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유의해야할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성장엔진을 정착시키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부실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을 가장 부작용이 적은 방법으로 신속하게
정리하고 퇴출시키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지금 영업이 정지되고 있는 종금사와 부실금융기관의 자산과 부채는
하루속히 건전한 타 금융기관에 인수시키고 그 업무를 이관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지금 파산법의 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가칭 "구조조정법"을
만들어서라도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다음으로 산업조직의 개혁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기업은 대기업들도 본질적으로는 가족상점식의 경영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과 조직은 철저한 시장경쟁원리에 맞추어야 한다.

선단식경영과 경영다각화는 무한경쟁시대에는 맞지 않으며 모든 직원,
모든 계열사가 경쟁력을 갖지 않으면 생존할수 없다.

부채경영에서 탈피해야 하고 질경영을 실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끝으로 노동시장의 개혁과 근로자들의 협조가 따라야 한다.

앞으로의 경제성장은 고용증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유동성, 즉
노동이 저생산성 부문에서 고생산성 부문으로 이동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에 고용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그러한 미봉책으로
고용문제는 해결될수 없다.

일시적으로 고통이 따르더라도 노동의 유연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그대신 실업보험과 노동재훈련을 강화하는 것이 함께 사는 길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